시오노 나나미의 이분법(二分法)

 

      지난 주 출장을 가는 길에 공항 서점에 들렸더니 반가운 책이 나와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4권"이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를 달고, 부제에 어울리게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대주교의 초상을 표지에 싣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누워 있었다. 워낙 오랜 시간을 두고 한 권씩 출간이 되면서, 새로운 권이 출간되어 서점에 나올 때마다 오래만에 예전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반갑게 책을 집어 들지만, 오래만에 만난 친구의 행적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지난 번에 만나서는 어떤 얘기를 했는지가 아리송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듯이 시오노 나나미의 이 시리즈도 새로운 편이 나올 때마다 이전에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고 읽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떤 때는 새로운 편을 한참 읽다가 그 전편(前編)을 읽지 않고 뛰어 넘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적도 있다. 물론 시리즈 전편(全編)을 꼭 다 읽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이빨이 군데군데 빠져 있어도 시오노 나나미의 이 시리즈는 무방하다고 보여지기는 하다.

 

      "로마인 이야기"가 처음 한국에서 발간된 것이 1995년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 이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1997년초 미국에 장기 출장을 나와 있을 때 미국 삼성전자에서 주재하고 있던 선배와 이 "로마인 이야기"를 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출장의 상당 기간을 함께 보냈던 제일기획 출신의 다른 선배 하나가 대화에서 소외되어서 안되겠다고 해서 서울 집에 있던 1, 2권을 가져다 준 것이 기억이 나고, 지금 우리 집의 서가를 보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이외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들이 수 권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한국에 소개된 초기부터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독서를 무척 즐기시는 현재 제일기획 사장님이 부임하신 후 임직원들에게 제일 먼저 권장한 책이 바로 이 시리즈였고, 상대적으로 한국 책을 접하기 힘든 주재원들에게는 해설서와 함께 2001년 당시까지 나와 있던 9권까지를 전집 형태로 묶은 것을 선물해 주시기도 하셔서, 이런 시리즈 물로는 드물게 9권까지는 빠진 이빨 없이 서가에 잘 자리를 잡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쓰기는 내가 이전에 접했던 것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학부 졸업 논문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한 친구가 소설로 논문을 대체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께서 유쾌, 호방하게 웃으시며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 '논문으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역사소설을 어떻게 쓸 수 있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신이 있으면 도전해보라며, 다시 웃음을 터뜨리셨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가당치도 않게 몇몇은 제법 가능성 여부를 탐색해 보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학문적 논증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적 치밀함의 바탕 위에서 소설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는데, 어설픈 학부 논문의 기준을 맞추는 데에도 헉헉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1차 관문 통과가 힘든 지경이었으니, 거기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설을 창작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래도 소설로 논문을 대체한다는 못 이룬 꿈과 같은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룬 존재로 시오노 나나미가, 시오노 나나미 식의 글쓰기가 다가 왔던 것이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는 학문이 우선이었던 우리와는 반대 방향에서 출발하였다. 소설가적인 상상력의 바탕 위에서 학문적인 논증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사료와 논거를 갖추려 노력했다. 자신은 역사가가 아니라면서 아카데미즘의 잣대를 갖다 대지 말라고 했으나, 인간과 그 인간들이 이루어가는 사회라는 큰 틀에서의 근본적인 접근을 통하여 시오노 나나미는 학문적 논증의 세계를 뛰어 넘는 글쓰기의 세계를 이루었다. 자유발랄한 상상력과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사료의 분석이 합쳐져 역사를 재료로 한 새로운 글쓰기의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많은 대하소설들, 특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일수록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스케일과 참신함이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빠져 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로마인 시리즈도 유감스럽게, 적어도 내게는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점에 들를 시간이 없었던 것이 시리즈의 이빨이 빠진 주된 이유이겠으나, 독자로서의 기대감, 독자와 저자의 긴장감이 떨어진 것 또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번에 14권을 보면서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글쓰기가 어떻게 보면 흡사 로마 역사 흐름의 종속변수와 같은 양태를 보인다. 로마가 성장 발전을 하면 저자의 글도 활력이 넘치고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데, 반대의 경우에는 글 자체가 힘겹게 힘겹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성장기의 정점, 자연히 저자의 글에도 생명력이 최고조로 넘쳐흘렀던 때가 바로 카이사르를 다루었던 4~5권이었다. 이후 그 잃어버린 활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저자는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을 둘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극적인 대비의 효과를 주고자 세 가지의 이분법을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첫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로마인과 비(非)로마인으로 나누었다. 북방민족들은 로마에 얼마나 동화가 되었건, 로마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간에 '야만인'으로 출생에 따른 낙인을 찍어 버렸다. 둘째, 정치인들 특히 황제는 저자의 우상이다시피 한 '카이사르'를 완벽한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델로 삼아서 '카이사르'와 '카이사르가 아닌 자', 다른 얘기로 하면 무결점, 무오류의 카이사르와 그런 카이사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여 결국 로마의 몰락을 가져오는 자들을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내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15권에서 더욱 많이 쓰이리라 생각하는데, 기독교도와 비(非)기독교도, 책에서 쓴 표현으로는 '이교도(異敎徒)'의 나눔이 나타난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를 무조건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기술을 하다보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역사상의 특정 국가나 인물, 종교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일치시키는 것은 애정의 단계를 넘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을 할 수 있는 단계이다. 그런데 그 일치가, 대립되어 배제하거나 배척하려는 상대를 만들어 겨우 유지가 된다면 그 자체가 멍에로 작용하게 된다. 최고의 문화 수준을 자랑하는 세계 제국 로마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을 '야만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카이사르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어떤 황제의 잘못에 불필요하게 '카이사르라면 다르게 했을 것이다'를 남발하고, 기독교의 승리를 극적으로 장식하기 위하여 저항적인 이교도의 모습을 부각하는 것은 저자 자신의 카타르시스는 되었을 지 몰라도, 독자들이 저자와 일치하는 단계에 이르는 데에는 아주 부담스러운 장애물로 작용을 하고 있다.

 

      어느 때 보면 사랑은, 증오의 대상을 밖에서 찾아서 그것을 얼마나 증오하는가로 자신의 사랑의 강도를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어느 광고회사나 그렇겠지만 자신의 광고주의 제품을 즐겨 구입하고 쓴다. 그런데 어떤 때 보면 미묘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광고회사들이 광고주의 제품을 쓰는 것보다 광고주 경쟁사의 제품을 쓰지 않는데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광고를 해도 경쟁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매달리는 경우도 많다. 좁게만 좁게만 들어가는 전형적인 레드 오션(Red ocean) 아닌가?

 

      시오노 나나미 여사 한 분에게 로마의 역사에 관하여 우리는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여사는 로마 역사의 종착역을 향하여 본인으로서는 고독하다고 느낄 분투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우리 부모님과 같은 연배인 여사가 '어떻게든 끝은 봐야지' 하면서 조금은 억지로 지면을 메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어떻게든 빚은 좀 갚자'는 심정으로 보는 때도 있다. 여사가 로마인 시리즈라는 레드 오션이 되어가는 '글감옥'에서 해방되어, 더 큰 로마의 세상으로, 더 멋있는 카이사르의 인간미로, 관용적인 기독교의 세계를 그리는 블루 오션(Blue ocean)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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