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보울(Super Bowl)의 꿈

 

      1999년 중반에 미국의 법인으로 발령이 나서 가면서, 몇 가지 꼭 이루고자 하는 꿈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것이 바로 슈퍼보울(Super Bowl)에 삼성의 광고를 싣는 것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슈퍼보울은 단순한 프로 미식축구의 결승전 이상이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파티를 여는 3대 명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군대 생활을 했던 부대가 군기가 많이 빠진 미군 부대이고 지금과 비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부대 전체가 미국과의 시차로 월요일 아침부터 경기가 중계되매 '슈퍼 먼데이(Super Monday)'라고 하여 하루를 쉬었다. 내가 제대하기 직전 소위 모든 것을 FM으로 하는 정통 보병 출신 중대장이 부임을 해서 '슈퍼 먼데이'에 쉬는 관행을 없애려 했지만, 부대원들의 사보타지성 저항에 부딪혀 오전까지 경기를 시청하고, 오후 근무만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광고하는 사람들에게 슈퍼보울은 꿈의 이벤트이다. 도대체 단일 경기에 1억명에 가까운 시청자들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광고 및 광고를 싣는 기업에 대한 대회 전후에 걸친 관심과 주목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슈퍼보울 시청자의 20% 이상이 경기보다 광고에 더 흥미가 있어서 슈퍼보울 중계를 본다는 조사 결과가 2000년 이후 매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매출 자체는 여러 가지 복합 요인이 작용을 하지만, 광고의 즉각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홈페이지나 특정 관련 웹사이트로의 접속율이 2005년의 경우 슈퍼보울에 광고를 실었던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바로 다음 날 27% 증가하였다고 한다. 물론 예전에 특히 2000년에 닷컴 기업들이 앞 다투어 슈퍼보울에 뛰어들어 슈퍼보울 직후 접속자가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서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당혹스러운 척 하면서 자랑스럽게 내보내곤 했던 때보다는 낮아진 수치이다.

 

      삼성의 광고를 슈퍼보울에 싣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던 것은 그렇게 높은 시청율과 주목도와 함께 삼성만의 독특한 사정이 있어서였다. 과거의 삼성은 누구나 알다시피 해외 시장,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시장에서는 철저하게 가격만을 무기로 장사를 했었다. 그리고 실제 제품의 품질이나 기술력이 선발 업체에 비해서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디지털 시장이 열리면서 삼성은 거기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고, 핸드폰을 위시하여 디지털의 핵심 부분에서 선발업체들을 기술력에서 따라 잡았고, 덩달아서 모든 제품들의 품질 수준이 어느 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거나 리드하는 지위에 올랐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소비자들은 그렇게 봐주지를 않고, 예전의 싸구려 제품을 팔던 삼성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담당자로서 마음이 급했다. 뭔가 획기적인 조치가,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충격요법은 소비자 뿐만이 아니라, 삼성 내부의 임직원들에게도 필요했다. 가격경쟁력과 물량위주, 선발기업들에게 고개 숙이던 버릇에 길들여진 임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무대가 절실했다. 그런 면에서 슈퍼보울은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최적의 무대였다.

 

      지금도 나의 슈퍼보울 꿈은 유효하다.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과 인터브랜드가 산정한 브랜드 가치가 예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소니(Sony)를 앞질렀지만, 소비자가 진정한 속마음으로,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가치와 판단 측면에서 삼성이 앞서고 있는가라는 부분에서 회의가 든다. 삼성 제품이 디자인이 더 좋고, 훨씬 앞선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는 데 동의를 해도, '그래도....'하면서 소니 쪽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이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 미국의 소비자들은 삼성 제품이 싸기는 하지만, 샀다가 '낭패를 볼 것이다'라는 불안한 심정을 깔고 있었다. 삼성이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 그런 불안감을 없애고, 소니나 다른 기업들의 제품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게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때가 바로 내가 처음 슈퍼보울을 꿈꾸던 그 시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찾는 브랜드로 삼성을 만들어야 할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그 또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충격요법으로 아직도 슈퍼보울만한 것이 없다.

 

      이번 슈퍼보울 이후 우리 나라에는 예전의 '황우석 열풍'처럼 '하인즈 워드(Hines Ward)'가 영웅으로 떠올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우리야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당연스럽게 슈퍼보울 승부의 결과보다 광고물들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뛰어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수작은 없는 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 나타난 현상이 세 가지 정도 있다.

 

      첫째로 온라인(On-line)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두드러졌다. 30초 한 편 트는데 260만$ 정도로 매체비가 워낙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본 경기에 광고를 트는 것은 최소로 하면서 그 광고물들을 온라인으로 유인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둘째로는 당연히 그랬어야 했지만, 그 동안 간과해 왔던 여성들을 타겟으로 하는 도브(Dove) 광고가 실리는 등 광고주들 구성이 다채로워 진 것을 지적하고 싶다. 미식 축구하면 바로 남성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가장 많은 여성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고물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광고물을 평가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언론사 등이 홈페이지나 특별 웹사이트를 통하여 조사(Poll)하는 아주 기본적인 방식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패널들을 구성하여 그 패널의 특성에 따라 추후의 효과까지 예측하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한 조사업체는 요즘 가끔 화제에 오르는 뇌파의 변화에 따라 광고물의 평점을 매기는 실험을 했는데, 일반적인 뇌파 조사에 구두(口頭) 반응을 첨가했다. 참가자들은 뇌파를 측정하는 헬멧같은 것을 쓰고, 말로 '좋다', '나쁘다' 식의 평가를 함께 내렸다. 이 실험 결과 뇌파와 구두 반응이 얼마나 일치했겠는가 동료들에게 물어 보았다. 조사에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친구들인데 아주 비관적으로 30% 이하일 것이다라는 대답이 주를 이루었다. 실제로는 70%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70%라는 수치도 적다고 생각을 했는데, 조사를 잘하고, 유용하게 써먹는 친구들의 실제 조사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이번 슈퍼보울 관련하여 내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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