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와 한자 사자성어(漢字 四字成語)

 

      인사이동과 그에 따른 업무 인수인계, 설 연휴 등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금요일 오후 늦게 단골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뺐다. 연초에 2년 전 쯤 치료하고 봉했던 것이 빠져서 치과에 갔더니, 깊숙이 박힌 옆으로 누운 사랑니가 다른 이빨들을 밀어내면서 치열을 교란시키고 있어, 사랑니를 빼야 된다는 얘기를 듣고 차일피일하다가 근 한 달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처음 얘기가 나올 때부터 치과에서는 '발치(拔齒)'라는 용어를 썼다. 내가 "이빨을 언제까지 빼야 된다고요?"하고 물어 보면, "발치는 한 달 안에만 하시면 됩니다", 처음 예약한 것을 취소하러 전화를 해서 "오늘 오후 사랑니 빼기로 했는데요"하면 "아, 오늘 발치하기로 하신 분이시지요,"하는 식이었다.

 

      신영복 선생의 옥중 사색과 엽서들을 원본 그대로 옮겨 실은 "엽서-신영복의 옥중사색" 중, 그 형수에게 보낸 엽서에서 이빨 뽑는 얘기가 실려 있다. 교도소에서 이빨을 뽑으면 포르말린 병 속에 넣는데, 얼마 동안 모았는지 두어 됫박은 될 것 같다는 얘기부터 시작하여, 치과에 가지 않고 스스로 이빨을 뽑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운동 시간을 이용하여 교도소 담장 밖으로 던지고 그것을 '일부분의 출소'라고 명명하고, 그 전의 비슷한 경험을 소개한다. 이빨을 뽑긴 했는데, 그 때는 담 근처로 갈 수 없어서 당시 교도소로 작업 나오던 어느 방직공장 여종업원의 주머니에 몰래 넣어서 밖으로 내보냈다는 얘기를 하며 '나는 징역사는 동안 풍치 때문에 참 많은 이빨을 뽑았습니다. 더러는 치과의 그 유리병속에 넣기도 하고, 더러는 교도소의 땅에 묻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담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단 이빨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心身의 一部分을 여기, 저기, 이사람, 저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라는 철학적 성찰로 잇고 있다. 이 신영복 선생의 글을 소재로 문필가로도 제법 이름이 있는 어느 치과의사가 신문에 실은 글을 보았다. 재미있고 유익한 신영복 선생다운 이야기인데, '이빨'은 동물의 그것이고, 사람에게는 '치아(齒牙)'라고 써야 한다는 충고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도 '이빨을 뺀다'고 하지말고, 사람인 이상 치과에서 '발치'를 주장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인과 함께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어떤 치과 의사는 환자에게 '이빨'이라는 표현을 쓰고 나면, 나중에 부인에게 조용히 혼났다고 한다. 동물과 인간의 '이빨'과 '치아'의 구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원칙을 거론하면서, 치과의사로서 무식한 '이빨'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는 타박을 듣는다고 한다. 그 분의 변명인즉, 처음에는 '사람도 동물이다'에서 시작해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라 하는데, 그 부인에게는 별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본인의 의지만은 높게 사줄 수 있을 것 같다. 환자가 '이빨'이라고 하면 본인도 그렇게 하고, '치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빨'이든 '치아'든 아프거나 불편해서 온 사람들에게 그런 용어 가지고 더욱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이 빨리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라는 스스로의 결론에 박수를 보낸다. 그 부인에게는 아마 계속 잘 통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언제부터인가 한자 4자성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 유행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라는 것은 2001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했는데, 2004년에 '당동벌이(黨同伐異)'를 선정하면서 불쑥 그 전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의 것으로 '상화하택(上火下澤)', 올해 2006년의 경구 비슷하게 '약팽소선(若烹小鮮)'을 내놓으면서, 언론과 정치계, 경영계에 까지 사자성어 열풍을 몰고 왔다. 예를 들면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CEO들 조사를 통하여 올해의 경영화두로 '운니지차(雲泥之差)'를, 정세균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본인의 행동지침으로 '눌언민행(訥言敏行)'을 썼고, 성신여대 교수로 옮긴다는 MBC의 손석희 아나운서까지 본인 프로그램에서 비록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사자성어를 썼다.

 

      2004년 '당동벌이' 이전에는 교수신문에서 어떤 사자성어를 선정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게 되었다. 2001년이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이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이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대충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가끔은 쓰는 말들이다.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2003년까지의 사자성어들은 내가 쓰고 있는 한글프로그램의 한자사전에 등록이 되었는데, '당동벌이'부터 '상화하택'과 '약팽소선'은 새로이 등록을 해야 했다. 나는 교수들이 부러 '당동벌이'부터 어려운 사자성어를 골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우왕좌왕'과 같은 일상적인 사자성어들이 마치 치과의사에게 '이빨'이라는 단어처럼 생각되었을 수 있다. 사자성어에서도 교수님들께서 사용하실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계급분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일 뿐이다. 그런 것들을 부추긴 것이 언론과 정치권이다. 굳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사자성어를 찾아서라기 보다는, 사자성어를 다루고, 비슷하게 사용함으로써 대학 교수가 상징하는 지성의 대열에 동참, 편승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졌다. 물론 예전에도 '토사구팽(兎死狗烹)', '격화소양(隔靴搔痒)' 따위의 말들이 나오고, 어느 대통령은 평생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사자성어만 붓글씨로 쓰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한 순간,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한 가십으로 화제가 되었던 데 비해서 이번에는 특히 언론에서 주체적으로 사자성어들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유통시키고 있는데 큰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한자와 사자성어를 많이 쓰는 편이다. 표의문자로서 한자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도 한정된 글자 수로 많은 뜻을 그리고 두리뭉실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 다른 말로는 내가 내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내뺄 수 있는 공간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데서 찾아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그렇게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나 자신의 차별점이나 우위점으로 삼아서도 안 될 말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 전체 국민의 평균적인 한자 사용능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 속도는 더욱 빠르다. 이들이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한문 수업도 받았고,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천자문부터 익혔으며, 직장에 들어오기 위하여 상용(商用)/상용(常用) 한자를 공부하고 온 친구들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한자 공부는 상급학교 진학과 취직을 위한 도구였을 뿐으로, 그것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한자는 예전의 권위주의의 화신처럼만 여겨질 뿐이다. 게다가 요즘의 사자성어 열풍이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들의, 꼰대, 꼴통들의 한자'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다. 몇몇 신문들은 이런 세태를 개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사자성어를 이해하면서 써대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위안을 찾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 같다. 수 년전부터 떠들던 '신문의 위기'리는 해법을 '독자(소비자)는 무식하다'라는 명제를 성립시키며, 거기에서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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