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아이들’을 만나다




        따지고 보니 시카고를 최소한 여섯 번은 들른 것 같은데, 거의 항상 짧은 일정으로 잠깐 들러서 일만 보고 떠나곤 했다. 게다가 대부분 겨울에 시카고를 방문하여 아예 호텔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나 현대미술관(MOMA)와 비교가 되겠냐는 시건방진 생각으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지난 7월에 시카고에 머무르는 동안, 정 할 일이 없던 주말에 혼자 시간 때울 겸 처음으로 큰 선심 쓰는 냥 시카고미술관에 갔다.




        시카고미술관은 ‘앗’하고 놀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전시물도 지역적으로는 동서양을 망라하고, 시대적으로도 선사시대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하고 알차게 갖추었다. 그전까지 아무 이유 없이 뉴욕의 미술관들과 비교하며 폄하한 것이, 괜히 혼자 쑥스러워져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돌기 시작했다. 우선 하나의 구획으로 나누어진 전시실 내에서의 그림의 배치, 특히 조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그림 전시실들은 너무 환하고, 조명이 그림에 반사되기 일쑤여서 제대로 된 감상 포인트를 잡기가 힘들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관 쪽으로 오면 반대로 조명이 그윽한 아시아의 맛을 내려는 의도에서인지는 몰라도 너무 어두웠다. 그리고 꼭 관람객들이 전시실의 배치, 동선(動線)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별인지 지역별인지 어떤 원칙에 따라 전시실을 돌고 있는 것인지, 돌아야 하는 것인지 애매했다.




        조명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시아관 쪽의 전시물들도 정말 훌륭했다. 특히 중국 당나라 때의 웅혼(雄渾)하면서도 코믹하고 이국(異國)적인 토용(土俑) 인물상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었다. 그 때까지의 중국 역사에 나타난, 어느 왕조의 그것과도 구별되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큰 코의 서역 상인들과, 배우, 유랑극단의 활기찬 몸동작은 그 자체로 가슴이 확 트이고, 크게 호탕한 웃음 한번 터트리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호방한 당나라 때의 예술품들을 지나 꼭 시대별로 배치한 것은 아니지만, 송명대(宋明代)의 자기(瓷器)들이 뒤를 이었다. 예술적인 향취야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 역동성에서 당대(唐代)보다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문외한의 눈에는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자기들이 죽 진열되어 있어, 휙휙 지나치는데 미로와 같이 생긴 작은 방으로 접어드니, 별다른 표지판도 없이 고려시대 청자로부터 시작하여 조선말까지의 백자, 분청사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서도 배웠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고려청자의 세계적인 우수성을 예전부터 직접 느끼고 싶었다. 서울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박물관을 가서 고려청자를 보아도 특별한 감흥도, 가슴 떨리는 감동도, 솔직히는 중국의 청자보다 확실하게 우수하다고 하는 점도 느끼기 힘들었었다. 시카고미술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제법 설명판도 읽고 눈여겨보았으나, 이내 건성건성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한 작품을 만나고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서 뚫어지게 그 작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작품 속의 연을 날리는 어린이들을 놀라움과 흐뭇함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려의 아이들’이 청자 안에서 연을 날리며 놀고 있었다. 예쁘게 꾸미지도 않았고, 과장된 몸짓도 없이, 세파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흰옷을 입은 형제가 버드나무 앞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형은 이미 연날리기가 익숙한 듯, 무덤덤하지만 자신 있는 얼굴로 이미 연을 하늘로 띄워 올렸고, 동생은 형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형이 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따라하려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공부와 숙제, 학원에 시달리며 넌더리를 내고, 틈만 나면 게임에 몰두하려는 우리 애들의 잃어버린 표정, 어린이다운 모습의 원형을 찾은 것 같았다. 더 이상 고려청자는 교과서를 통하여 배운, 책에 갇힌 예술품이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었을 도공(陶工)의 흐뭇해하는 미소까지 떠올랐다. 단순히 상상 속에서만 떠오른 것이 아니라, 역시 이전에 교과서에 갇혀 있던 미소가 도공의 얼

굴로 살아났다. 흔히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신라 때의 기와에 새겨진 얼굴!




        다른 모습의, 다른 놀이를 즐기고 있을 고려의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았다. 보일 듯 말 듯 눈가에는 기대 섞인 미소를 머금고, 입맛을 다시는 입 모양과 함께 손이 닿지 않아 안타까운 표정이 어린 채,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를 향하여 한껏 손을 뻗치고 있는 고려의 다른 어린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포도 몇 송이 듬뿍 안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드나무 앞에서 연 날리던 친구들 불러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구 하나 엎드리든지, 큰 놈이 작은 놈을 어깨에 태워 따든지 했을 것이다. 아니 멀리서 바라보던 도공이 잠깐 일손을 멈추고 와서 포도송이를 따서 주고, 자신의 마른 입술도 잠깐 축이다가 미소 한번 짓고 돌아갔을 것이다.  

 시카고미술관에서 보았던 연 날리는 고려의 아이들이 새겨진 청자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아보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언급된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바로 위의 포도동자가 새겨진 청자 주전자는 중앙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스스로 나서서 고려청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판에 박힌 소리로 고려청자는 세계 최고라는 말만을 듣고 외웠고, 외국에 나가서는 의무처럼 박물관에 들렀다가 약간은 국수주의적인 마음을 숨기면서 한국 전시실을 찾아 건성으로 둘러보았을 뿐이다.




        감동의 파문은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로부터 시작한다. 호수가 넓다고 아름답다고 힘주어 얘기하는 데서, 의도적으로 파도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부러 감동을 자아내려 고려의 도공이 어린이들을 청자에 새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자연스러운 진실성이 천여년 후 후손의 메마른 가슴에 바다 건너에서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조만간 박물관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중앙국립박물관을 가려한다. 21세기의 아이들과 고려시대의 아이들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시카고미술관에 갔을 때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직후 마침 시카고로 출장을 가는 동료가 있어, 시카고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촬영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짐만 풀고는, 무더운 날씨를 뚫고 미로처럼 얽힌 미술관을 헤매며 촬영을 해준 나의 동료 신미경 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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