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렉서스가 없다




        이제 렉서스(Lexus)가 토요다(Toyota)에서 나온 고급차의 브랜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렉서스는 이제 전설이 된 브랜드전략의 일종이다. 모기업의 브랜드를 숨기고 독립브랜드로 새로운 제품 라인을 시장에 내놓는 행위. GM의 새턴(Saturn)도 그런 유형의 하나이고,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양문형 고급 냉장고 부문과 대형 TV 부문에 진출하면서, 삼성이라는 모기업 브랜드를 숨기고, 각각 지펠(Zipel)과 파브(Pavv)라는 독립형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위에서 예를 든 제품들은 한결같이 자동차와 대형 전자 제품과 같은 아주 값이 비싼 소위 신경을 많이 쓰고 정보 탐색을 많이 한 연후에야 구입을 결정하는 고관여제품들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에 대한 정보 탐색 과정에서 과연 그 뒤의 모기업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소비자들이 사겠노라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위의 예들의 공통점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장벽을 넘기 위한 수단으로써 모기업과 별도의 독립브랜드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GM의 경우부터 보면, 미국 소비자들의 GM에 대한 불신의 벽이 너무 높고, 특히 자동차의 품질, 연비 등에서 GM이 일본 자동차에 필적할만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서 나온 고육지책이 ‘Different Car, Different Company'라는 새턴이었다. 나는 1991년에 새턴의 홍보영화를 정말 감격에 겨워 본 적이 있다. GM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회사,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고,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흡사 개척시대 정착촌을 짓듯이 하나둘씩 모여 들어 공장을 세우고, 그 와중에 움막이나 야전텐트와 같은 곳에서 연구진들은 또 옹기종기 모여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들이 안개 낀 듯한 화면처리와 함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GM의 입장에서 보면, 아비로서 아비답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고백하고, 지금 세상에 뛰어든 이 막내는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고백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이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 새턴의 딜러들은 다르다, 새턴 자동차는 이전의 GM자동차와는 다르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고, 새턴 소유자끼리의 클럽들도 형성이 되었다. 그러나 GM과 새턴의 절연은 정말 제스츄어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스츄어나 PR플레이도 썩 잘된 것이 아니었다. 1990년에 새턴에서 판매용 1호차를 공장에서 몰고 나온 사람이 바로 악명 높은 GM의 최고경영자였던 로저 스미스(Roger B. Smith)였다. 새턴이 ’새로운 회사‘로 치장된 GM의 새로운 디비전(Division)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공연히 알린 것이다. 이후 새턴의 초기 성공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GM의 다른 부문으로 인사 이동되고, 기존 브랜드들과의 제품 라인업 조정이라는 권력 다툼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새턴은 이제 그 풋풋함을 잃어버리고, GM의 그렇고 그런 하나의 디비전으로, 이제 GM의 그 많은 실패 사례의 하나로 가끔 얼굴을 내밀고 있을 정도이다.




        토요다의 렉서스나 삼성의 지펠은 GM의 새턴 사례와는 약간 다르다. 토요다나 삼성은 기본적인 품질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의 확고한 신뢰를 획득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품질 이상의 감성적인 혜택이라는 프리미움, 고급감이란 영역에서 소비자들의 허가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1989년 미국의 고급차 시장은 캐딜락이나 링컨 타운카와 같은 아주 미국적인 보수 차종을 떠나서는 벤츠와 BMW가 휩쓸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벤츠와 BMW같은 독일산 차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고급감을, 일본차인 토요다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삼성이 지펠을 출시할 1990년대 중후반에 양문형 고급 냉장고 시장은 GE를 비롯한 외국제품들이 휩쓸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삼성 제품을 비롯한 국산제품들의 기본적인 품질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나, 고급 제품을 쓴다는 심리적 혜택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토요다와 삼성은 이런 장벽을 기존의 토요다와 삼성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와 새로운 유통 채널을 통하여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시함으로써 해결을 하였다. 그러나 렉서스나 지펠이 성공한 기본적인 바탕에는 기존의 삼성과 토요다의 품질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렉서스나 지펠 사례는 워낙 많이 얘기되는, 이제 고전이 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만 하자.




        8월 7일자의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보았다. 9월초에 드디어 렉서스가 일본에 렉서스 브랜드로 출시된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렉서스는 토요다라는 막강한 기업 브랜드 아래, 아리스토(Aristo), 쏘어러(Soarer), 알테짜(Altezza)와 같은 서브브랜드로 시장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왜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성공신화를 쌓아온 렉서스가 정작 자신들의 본고향인 일본에서는 발조차 붙이지 못하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느 문제나 그렇지만 서로 엉켜 있는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일본에서는 토요다라는 브랜드가 아주 소형에서 프리미움까지 아우를 수 있는 막강한 브랜드라 굳이 렉서스라는 에둘러 가는 독립 브랜드가 필요 없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기업 브랜드에 대해서 갖는 신뢰와 구매 준거로 작용하는 면이 다른 곳보다 훨씬 크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립 개별 브랜드전략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P&G도 일본에서는 기업 브랜드를 다른 곳보다 크게 내세운다.




        둘째는 일본인 특유의 집단주의를 들 수 있다. ‘튀지 말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처럼 굳이 고급 브랜드라고 대놓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사려고 하다가도 말 것이다라는 심리적 요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렉서스가 1989년에 출시한 시점부터 일본은 버블경제에 들어가, 고급 자동차 시장이 크게 형성되기가 힘들었다는 면이 있다. 그리고 둘째의 요인과 맞물려 버블 경제 상황에서 대놓고 고급 브랜드를 출시할 때 예상되는 사회적 여론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제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어떻게 보면 1980년대 말의 미국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벤츠와 BMW가 급속하게 세를 늘여가고 있고, 토요다는 첨단, 패션, 품위에서 무언가 예전의 GM의 캐딜락이나 포드의 링컨과 같은 나이 먹은 이미지를 주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사회 가치관에 따른 집단주의에 개의치 않는 세대가 그런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그 국면을 타개하고자 드디어 렉서스 브랜드가 나온지 16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금의환향이 될지, 씁쓸한 귀환이 될 지는 흥미 있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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