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쓰레기(War trash)




        시카고에서 들른 서점에서 위의 제목과 같은 소설을 발견하고-“War trash", Ha Jin, Vintage, 2004-, 한참을 망설이다가 샀다. 별 생각 없이 집어 들고 서문과 소개하는 부분을 읽기 시작하는데,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포로가 된 국부군 장교 출신의 중국의용군’이란 소재가 바로 나를 옴짝달싹하게 하지 못하게 한 채, 서점 구석으로 가서 30여 페이지를 단숨에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페이퍼 백 두 권 값으로 세 권을 사라’는 프로모션이 걸려 있었는데, 눈을 씻고 다른 페이퍼 백 두 권을 사려 해도 살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을 더 기다리다가 귀국 전 날에야 가격대로 지불하고 사서, 귀국 비행기에서 아껴가면서 읽었다.




        주인공은 원래 장개석이 만든 황포군관학교를 나온 국부군 인테리리 출신이지만, 국부군과 국민당 정부의 부패에 회의를 느껴,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공산군에 항복하고 입대를 한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까지 있는 상황에서 부대가 한국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하게 되나, 51년의 춘계공세 기간 동안에 미군에 포로로 잡혀서 부산, 거제도, 제주도 등을 오가며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황포군관학교를 나왔다는 경력에, 영어 구사 능력을 인정받아, 통역관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는 친공과 반공으로 나뉜 양 쪽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꿈 하나로 버티는 그는 중국군 포로의 경우 ‘본토로 갈 것인가? 대만으로 갈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으로 귀결되면서, 실제 전장에서보다 더욱 치열하게 포로수용소 내에서 전개되었던 이데올로기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양 진영을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넘나들게 된다.

        

        그 중간 주인공은 인도와 같은 제 3의 중립국행에 강하게 이끌리나, 어머니와 연인으로 상징되는 고향으로 결국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향에 도착하니, 연인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포로수용소에서 본토귀환을 부르짖는 친공포로들의 핵심 역할을 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주인공을 본토귀환으로 몰아넣었던 인사들이 귀환 후에 우파비판운동과 문화혁명 등을 거치면서 스러져 가는 것을 담담하게 보면서, 주인공은 70세가 넘어 오게 된 미국에서 담담하게 이 회고록을 소설 형식으로 적는다. 작가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고 하니, 그 아버지의 회고를 축으로 하여, 자료를 섭렵하며 살을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며 궁금한 부분이 몇 개 있었다. 첫째, ‘War trash’는 대체 어떤 중국단어를 이렇게 옮겼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한(英漢)사전도 찾아보고, 거꾸로 대충 때려 맞추는 형식으로 한영(漢英)사전도 찾아보았지만, 실마리를 줄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하여 관련 자료를 찾으며, 작가가 제목에 대하여 한 얘기를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쓰레기 같은 백인’들을 칭하는 ‘White trash'에서 그냥 따온 말이라고 한다. 요는 나는 작가가 중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1985년에 미국으로 건너 왔다는 약력을 보고 그가 당연히 중국어로 글을 쓰고, 영어로 옮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는 미국에 온 이래로 계속 영어로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보스턴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를 하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또 그의 정체성에 대한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들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눈에 걸렸던 중국어식 표현들이 그런 걱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POW(포로)’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계속 나는 최인훈 선생의 “광장”을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가 붙인 참고자료에는 “광장”이 들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작가가 한국의 위대한 그 작품을 보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 사실을 개인적으로나마 확인하기 위하여 애써 부탁을 하여 “최인훈 전집1-광장/구운몽”을 빌려서 읽었다. 빌려서 “광장‘을 읽고는 내 자신이 어지러워졌다. 확실한 것은 내가 전에 ”광장“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소설의 내용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달랐고, 생소했다. 오직 마지막의 주인공 이명준이 사라진 장면이 확실하게 내가 읽은 것으로 기억에 남는데, 아마 80년대에 인기가 있던, 모신문에서 연재하던 ”문학기행“에서 상세하게 묘사된 그 부분을 읽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완벽하게 “광장”을 수십번 읽은 것처럼 착각을 할 수 있을까, 추론을 하면 정리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80년대 초 대학생의 필독서로 되어 있었던 책이니만큼, 위에서 얘기한 ‘문학기행’류의 기사나, 친구들과 선배들의 얘기나 발제한 것을 들으면서, 건성으로 거짓으로 ‘광장을 읽었다’고 대답도 했겠고, 그러다보니 당사자도 읽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포로수용소를 그린 작품이나 전사들을 읽으면서 그것들로 내가 읽지 않아 비어 있던 “광장”의 공간을 맘대로 채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03년말에 미국 소비자들에게 알콜도수 20도 이상의 하드 리쿼 광고에 대해서 물은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약 40% 정도의 소비자가 TV에서 광고를 보았다고 했고, 광고 내용까지도 훌륭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실상은 2003년말까지 TV에서 하드 리쿼 광고는 허용이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착각은 자유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체가 광고인에게 정말 유용하고 특출한 기술일 수 있다. 잡지에서 단지 한 페이지 광고를 봤을 뿐인데, 30초짜리 TV광고를 본 것과 같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것!




        하진의 책을 보면 코미디와 같은 장면들이 몇 개 나온다. 정체성의 혼란과 착각, 오해가 범벅이 되어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첫 번째는 좀 잔인하지만, 반공포로들이 주인공을 끌고 가, 기절을 시킨 후 본토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가슴에 문신을 새긴데서 시작한다. “FUCK COMMUNIST"라고 영어로 새겼는데, 이것을 주인공이 본토로 돌아와서 의사를 찾아가 상의하자, 의사가 다 지우기는 힘들다면서 COMMUNIST 부분의 일부 철자를 빼서 미국을 욕하는 ”FUCK US"로 고친다. 그런데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은 뜻에 상관없이 적국의 언어를 새기고 다닌다는 이유로 그를 심하게 비판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또 하나는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미군들이 전방 쪽으로 자신들의 부대가 이동한다고 하자, 중국군 포로들에게 중국군에게 잡혀도 죽이지 않도록 자신의 보장해주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 친구는 좋은 친구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중국의용군 누가 보장하니 생명을 보전토록 해달라’는 증명서를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무려 100명이 넘는 미군에게 써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증명서를 실제로 받아간 미군들이 많았다고 한다. 포로에게 자신의 생명을 보전토록 해달라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하는, 아마 개개 미군들의 공포를 반영한 그런 아이러니한 한 장의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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