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로 항공사 브랜드 만들기




        사람들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상당히 오랜만에 해외를 가게 되었다. 간만에 외국을 간다는 자체보다 대한항공을 탄다는데 남다른 기대를 안고 탔다. 요즘도 계속 TV나 온라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승무원들이 패션쇼를 벌이는 듯한 대한항공의 광고를 인상 깊게 본 까닭이었다. 사소하게 얘기하면 새로운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을 보고 싶었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광고 자체가 기존의 대한항공의 약간 안개 낀 듯한 배경 속에 미소여왕(Smile Queen)으로 뽑힌 스튜어디스가 약간은 과장되게 입술 양쪽 끝을 살짝 치켜 올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매듭을 짓는 광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전체적으로 대한항공이 광고가 달라진 것과 부합되게 얼마나 달라졌는가 보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유니폼도 예전 그대로였고, 꼭 예전의 대한항공이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경우 심하게 얘기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 대한항공의 광고는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갖다 준 꼴이다. 하지 않았으면 아무런 기대 없이 여느 때와 같이 타고 했을 텐데, 괜한 기대감 바람만 잔뜩 넣어 쓸데없이 승객, 즉 고객들의 기대치만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항공의 광고가 작품성 그 자체로만 보면, 물론 이것도 나의 주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세계 어느 항공사의 광고보다도 독창적이고 눈길을 사로잡는 훌륭한 작품인데, 이것이 거꾸로 광고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변화를 느끼지 못하니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1970년대초 1차 오일 쇼크의 여파가 한창이던 시절, 대한항공의 비행기들이, 모든 비행기들이 그랬는지는 여부는 모르겠지만, 표면의 페인트칠을 벗기고 금속 두랄루민 색깔 그대로 내보이며 항공사 표시 등의 최소한의 것들만 새긴 채 운항을 했다고 한다. 페인트칠의 무게만이라도 줄여서 기름 소비를 낮추어 보려는 정말 눈물겨운 시도였다. 사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최소한의 부분만 가린다고 해서, 외국의 항공계로부터 ‘비키니 항공사’라는 놀림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연륜이 얼마 되지 않는 제 3세계 개발도상국의 국적 항공사로서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또 1978년 연유가 어찌 되었건 항로를 이탈하여 당시 소련 공군 전투기의 기관총 세례를 받아 승객도 사망하고, 기체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르만스크 지역 호수 위에 동체착륙을 성공시킨 사건이, 운항기기 등의 기계적인 결함은 있어도 최고의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로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다른 항공사 대비 대한항공만이 가질 수 있는 브랜드의 요소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일들을 만약에 미국의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에서 했다면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하고 평가를 했을 것이다. 5년전쯤 괴짜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으로 유명한 버진 아틀랜틱(Virgin Atlantic)을 탄 적이 있다.원래부터 ‘버진(Virgin)'이란 브랜드에 관심도 많았고,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재미‘와 ’색다름’의 실례를 충분히 보아 왔기에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느 항공사와 다름없이 스튜어디스와 스튜어드가 항공기내 출입구 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승객들을 맞이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면서 내게는 아무 관심도 보여주지 않아서 혼자서만 속으로 뻘쭘해 하면서 복도를 지나가는데, 동료와 농담을 주고받던 스튜어디스가 후다닥 뒤쫓아 오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뒤를 돌아보는 내게 말했다. 아주 공식적으로 풀자면 “환영합니다. 우리 항공기에 오르셨으니 서로 인사는 해야죠”, 약간 편하게 해석하면, “이봐, 잘왔어.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안면 트고 지내자구”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좌석번호가 몇 번이냐 하는 말도 없고, “좌석에 가서 앉으시고, 이따 다시 보자고”라는 식의 말을 건네고는 다시 농담을 하러 출입구 앞으로 돌아갔다.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이 만약 이런 행동을 했다면?....아니 이런 행동을 하리라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사실 객관적으로 잘 하는 행동도 아니고. 그런데, 그런데 버진항공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이놈들, 참 역시 재미있네’ 하면서 넘어간다.




        대서양을 오가는 버진항공 비행기의 측면에 ‘Beat AA & BA(아메리칸항공과 영국항공을 깨부수자)’라는 구호가 붙여 있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에 ‘타도 대한항공’ 구호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아무리 서구의 몰염치하고 개방적이라는 특성을 감안해도 다른 어느 항공사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고, 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수많은, 60여개가 넘는, 버진그룹 내 회사들의 광고처럼 유머러스한 톤으로 채색한 버진항공의 광고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버진항공의 브랜드를 확실히 보여주고, 내 자신 속에 각인시킨 것은 비행기 표면의 직설적인 구호와 방자하기 짝이 없었던 스튜어디스의 행동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해당 브랜드를 결정하는 수가 있다. 아니 그런 사소한 것들이, 개개인의 경험이 모여서 브랜드를 결정한다. 광고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단초나 소재를 제공하거나, 특정한 인상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경우로 작용한다. 광고로부터, 아니면 광고 하나로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에 제법 길게 해외에 나와 있게 되었다. 7월말쯤 돌아갈 때면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은 광고에 나온 새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대한항공은 정말 변했을까? 귀국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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