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히스테리아의 폭력성

 일본계 미국인 역사박물관을 돌아보고




2001년 휴가를 LA에서 보내면서 들린 곳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본계 미국인 역사박물관(Japanese American Museum)'을 올해 초에 다시 들를 기회가 있었다. 2001년에는 'Nissei'-2세, 二世-'라고 일본인들의 미국 이민사를 다룬 책을 한창 읽고 있었던 중이었으니, 어찌 보면 현장 체험 학습과 같은 역할을 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올해에는 LA에 살고 있는 후배뻘 되는 친구와 함께 출장을 간 회사 동료와 함께 갔는데, 둘 다 상당히 풍부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일본계 미국인들이 당했던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백지 상태여서, 내 자신도 놀랐지만 그들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고마움과 함께, 몰상식한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감을 함께 나타냈다.




책에서나 박물관에서나 당연히 세계2차대전 때 벌어졌던 미국내 일본인들에 대한 내륙 지방으로의 강제 이주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미국 정부는 '강제 이주'라는 말보다는 공식 용어로 'Relocation(재배치)'이라고 하는 아무런 역사적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를 관장한 정부기관도 ‘WRA(War Relocation Authority:전쟁 재배치국)'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학계나 언론계에서는 보통 '강제 축출'이라는 의미를 가진 'Evacuation'이라고 호칭하고 있고, 아주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나치의 유태인, 집시 등의 강제 수용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해서 강제적인 집단 수용에 해당하는 'Concent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부터 나에게는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인도적인 일이 아무리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하에서라도,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는 더한 일들도 많이 일어났지만 말이다. 집단적 히스테리아에 한번 빠지게 되면, 내부에서 증폭작용을 일으키며 결국 상식이 사라지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광기와 함께 일어난다. 일본인 강제 이주와 관련해 20세기 미국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꼽힐 만한 두 사람의 언행을 보면, 집단적 히스테리아가 얼마나 사람들의 눈을 무의식적으로 멀게 하고, 또 확대 재생산 되는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인 강제이주와 관련한 미국의 오만




나중에 미국 대법관으로 인권운동의 수호신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존경받는 얼 워렌(Earl Warren), 20세기 최고 미국 기자를 뽑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이 그 주인공들이다. 일본인 강제이주 문제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워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인들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비행기공장, 공항, 댐, 급수장, 군사기지 등 전략적 거점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진주만 습격을 보건대, 이는 군사적 목적으로 치밀한 계획 하에 행해진 것이다." 19세기 말 계약 농업 노동자로 이민 오기 시작하여, 사회적 신분으로나 불평등한 법 조항에 의해서나 대부분 농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들은 도시 중심부에 살 수 없었다. 워렌이 언급했던 이른바 '전략적 거점'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일본인들이 모여 산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 시설물들은 당연히 도시 중심에 있을 수 없던 것들이었고, 따라서 주민들의 저항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일본인 집중 거주 지역에 건설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진주만 이후 3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런 사보타지나 소요사태, 오열 활동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누군가 질문하자 그는 더 기가 막힌 발언을 한다. "그런 활동이 없다는 자체가 더욱 불길한 것이다. 그들은 최악의 사태를 불러올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적국의 주민이 된 미국내 일본인들은 아무리 얌전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강제 이주의 근거로 삼아지고야 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조처가 취해지기 전 한발 앞서서, 서해안에서 일본인들을 강제 이주시켜야 한다는 칼럼을 썼던 리프만은 워렌의 말을 받아서 "그런 활동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이 얼마나 잘 조직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들은 최대의 충격을 줄 시기까지 기다리고 있다."실로 당시 미국 거주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여론의 포위 속에서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조그마한 사보타지라도 있었으면 '그것 봐라' 했을 테고, 가만히 있어도 '때를 기다린다'고 했을 테니 말이다. 일본인들에 대한 언론의 침소봉대, 왜곡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서부 지역의 미국 경찰은 일본인 집을 수색하여 무기류를 압수했는데 당시 신문에는 '일본인들, 1천 여정이 넘는 총기 보유'라는 헤드라인을 큼지막하게 단 기사가 나온다. 대부분이 사냥총이었고,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들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경찰조차 같은 수의 미국인들은 훨씬 많은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는데도 그 사실은 공표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을 무장폭동이라도 일으킬 위험한 세력처럼 몰아붙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일본인들의 강제 이주에 대하여 공식으로 사과했지만, 위의 두 사람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기껏 한 것이 리프만이 "그 당시의 상황 - 집단 전쟁 히스테리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the state of war hysteria'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the temper of the times'라는 표현을 썼다 - 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정도의 불가피 운운의 언급이었다.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발언에 대해서 반론조차 제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집단적 히스테리아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그런 여론의 폭풍을 몰고온 당사자가 당시의 분위기가 불가피했다느니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호도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당시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그들이 진실로 했어야 할 역할은 집단적 히스테리아에 빠진 사회를 이성(理性)의 세계로 복원시키는 중심축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집단 히스테리아를 증폭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그 적을 공격하는 분노를 폭발시켜 전쟁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전(反戰) 발언 내지는 일본인 변호 등은 모두 매국 행위로 매도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일본인들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의 운명을 희생 제물로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에 처하고 만 것이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든 정당화할 수 없어




그런데 한국의 경우를 볼 때 위와 같은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듣고, 지금도 진행형으로 계속 나오는 이야기 같지 않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백 번 양보해 워렌 대법관과 리프만 등이 전개했던 논리의 시대적 불가피성이 혹 있다고 인정할지라도, 누군가 사회적으로 약한 자나 집단에 대한 폭력, 억누름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다면, 그것은 더 높은 상위의 인간 본연의 가치에 위배되는 것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논리가 힘을 얻는 상황은 누구라도 언제든 조건만 되면 희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을 억누름으로써 자신의 힘이 상대적으로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는 세상에서, 공존과 공영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높아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현재 행동들을 성찰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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