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名唱)과 콜라




        며칠 전 어느 신문의 독자 투고를 통하여 국악을 늦깍이로 공부한다는 한 분이 안숙선 명창이 콜라 광고에 나오는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현한 것을 보았다. 그 분의 투고 중 일부분이다.




        ‘산 하나를 두고도 강 하나를 끼고도 서로 다르게 발전돼온 역동적이고 힘있고  또는 애절하고 구슬픈 우리 소리가 콜라에 섞여 병든 판소리로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않습니다. 콜라로 ’단청‘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콜라는 결코 선생님의 ’더늠‘이 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이 분의 투고를 보기 전까지 안숙선 명창이 나왔다는 콜라 광고를 보지 못했다.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여, 최신 광고물들도 그렇고 유행어를 혼자 알아듣지 못하는 덜 떨어진 모습을 요즘 많이 보여서, 어느 자리에서는 ‘진짜 광고하는 사람 맞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떤 회의석상에서는 면박을 그 자리에서 당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번 광고도, 광고물들이 실리는 웹사이트를 통하여 보게 되었다.

 

 

       광고물을 보고 바로 어쩔 수 없이 1980년 코카콜라에서 슈퍼보울 때 방영했던, “'Mean' Joe Greene"편이 생각났다. 터프하기로 유명했던, 소위 1970년대의 팀이라고 불렸던 ‘피츠버그 스틸러스’ 팀의 수비 주축이 바로 ‘교활(Mean)'한이라는 접두어가 별명으로 붙은 '죠 그린(Joe Greene)'이었다. 선수 생활의 황혼에 접어들었고, 팀의 성적도 70년대의 영광을 뒤로 하고 또 다른 패배-물론 광고에서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지는 않는다- 후에  녹초가 된 상태의 죠 그린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비추어 지는데, 경기장 쪽 문에서 빛이 들며 한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 소년이 조심조심 다가와 죠 그린에게 콜라 한 병을 건넨다. 콜라를 마신 죠 그린은 자신의 땀에 전 운동복을 소년에게 답례로 준다.  이 광고는 애플 컴퓨터의 ‘1984'와 함께 슈퍼보울 사상 가장 인기있고, 기억에 남는 광고의 1, 2위를 다툰다.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애플의 ’1984‘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경우 워낙 이 ’Mean Joe Greene' 편은 오랫동안 막대한 물량 후원과 함께 방영이 되어서 그런지 애플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한다.




        안숙선 선생 편에서는 선생이 공연중 목이 막히는 듯한 모습이 보이자, 콜라를 든 어린이가 객석에서 무대 앞으로 가서, 슬그머니 무대 위에 콜라 한 병을 놓는다. 미소를 띄우며 그 콜라를 마신 선생은 예의 힘찬 목소리를 찾는다. 또 하나 펩시에서도 비슷한 광고를 한 적이 있다. '엠 씨 해머(MC Hammer)‘란 1990년대초 유명했던 랩 가수가 모델로 나온 광고였는데, 누군가가 해머의 콜라를 코카콜라로 바꾸어 놓는다. 그 콜라를 마신 해머가 갑자기 흘러간 발라드를 힘없이 부르기 시작한다. 한 꼬마가 사태를 파악하고, 해머에게 펩시를 주자, 그것을 마신 후에야 해머는 예의 역동적인 랩으로 무대를 꾸미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대의 선택‘이란 캐치 프레이즈 하에 펩시가 야심 차게 기획하여 내보낸 광고물 중의 하나였다.




        1999년 여름에 안숙선 선생을 직접 뵌 적이 있었다. 당시 주재원 부임을 앞두고, 장기출장 중이었는데, 제일기획 미주법인에서 공익마케팅류의 사업 중의 하나로 명창 안숙선 선생 초청 공연을 기획, 실행하였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서, 갈라(Gala) 형식으로 춘향가와 수궁가의 대표적인 몇 부분만을 발췌하여 들려주는 공연에 갔다. 예전 마당놀이 형식으로 사물놀이 공연도 하고, 판소리 한 토막도 양념으로 들어가 있던 그런 공연을 제외하고는 본격적인-물론 갈라 형식이기는 했지만- 공식 명창의 공연은 처음이었다. 작은 몸집에서 째어 실린 소리에 처음부터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춘향이 옥에 갇혀 이도령 그리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가는데, 안숙선 선생이 먼저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가 싶더니, 자연스럽게 고수(鼓手) 선생이 슬그머니 손수건을 건넨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미국 친구 몇몇도 초대를 했는데, 레드 카펫 행사 하듯이 입고 와서 다른 사람들 보기 민망하게 만들었던 친구조차도, 그 대목에서 복받쳐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찰나였는데, 선생의 눈물에 자신까지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 날 공연 이후 간략하게 펼쳐진 뒷풀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춘향이 옥에 갇힌 대목을 이적까지 수 천번은 불렀을 틴디, 아직도 부를 적마다 눈물이 나니, 참말로.”




        안숙선 선생이 출연한 콜라 광고에 대한, 그리고 콜라 자체에 대한 투고하신 분의 불만에 대해서는 나도 많은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 판소리의 공력이 그렇게 콜라 광고 하나에 녹녹하게 넘어갈 수준이 아니니 안심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은 업계의 사람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콜라에 섞여 병든 판소리’가 되기에는 광고 자체의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예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는 약간의 진부성을 떠나서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모델 선택에 있어서의 의외성을 노렸을 수도 있고, 코카콜라 입장에서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지역성(Localization)'을 강조하며, 각국의 고유한 전통예술과 접목시키라는 지침이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안숙선 선생의 연기, 무대 모습, 어린이 모델과 객석 풍경, 소리의 내용 등이 모두가 서로 겉돌고 있었다. 어쩌면 콜라라는 제품 자체의 특성이 그런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족(蛇足)처럼 안숙선 선생이 미국 문화의 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고, 그들 문화 침투의 첨병이라는 콜라 광고에 출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것 같아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광고계 내에서의 업의 성격상 모델 선정에 가끔 간접적으로 참여할 뿐, 직접 접촉하고 교섭하는 데서는 몇 걸음 떨어져 있다. 그런데 정말 문자 그대로 모시기 힘든 모델들을 광고에 출연하도록 만드는 능력은 옆에서 보기에 어떤 방식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감탄할 따름이다. 안숙선 선생이 콜라 광고에 나가게 된 것도 선생을 책망하기 보다는, 광고업계의 관련된 인사들의 능력에 우선 치하를 보내고 싶다. 애초 조합 자체가 좀 어울리지 않는,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차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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