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y여, 잘해라!




        3월초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전자 쪽을 오랫동안 해온 만큼, 갑작스럽게 단행된 소니(Sony)의 최고경영자 인사가 화제에 올랐다. 따지고 보면 인사 발표 자체는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97년부터 소니를 이끌어 온 이데이 회장의 경질은 소니의 부진한 경영 실적과 함께 언제 공식화 될 것인가, 단지 시기의 문제로 오래 전부터 화제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 경영자에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이 올랐다는 사실은 여러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우선 언론 매체에서 다투어 다룬 것처럼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 중에서 최초로 외국인이 그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놀라게 했다. 물론 닛산 자동차의 경우 이미 브라질 출신의 카를로스 곤이 1999년에 CEO로 취임하여, 예전 마쯔시다에게 헌정되었던 ‘경영의 신(神)’이라는 호칭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닛산의 경우 회사 전체가 르노에 합병되면서 법적으로 일본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순순한 일본 회사로는 소니가 최초로 해외의 그것도 미국인 출신의 경영자를 영입하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처음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말에, 대표적인 해외의 벤치마크 대상으로 손꼽히던 두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IT 계열의 IBM과 음향과 영상 계열의 소니였다. IBM같은 경우 그야말로 'Big Blue'의 전성시대로, 규모와 스타일에서 미국적인 경영의 대표주자였다. 이 반면 소니는 가장 일본적이지 않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엄밀하게 보면 글로벌로도 통할 수 있는 가장 일본적인 형태의 경영을 보여 준 것이 소니였다. 물론 일본적인 경영이 과연 어떤 것을 지칭하느냐는 문제에서는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얄미울 정도로 상세한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자원을 거기에 집중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목표 최우선의 경영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소니가 워크맨을 개발할 때, 다른 파나소닉의 마쯔시다를 비롯한 많은 경쟁자들도 오디오 기기를 작게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기업들이 당시 존재하던 오디오 기기를 기본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빼는 형태로 작업을 진행시킨 반면, 소니는 소비자들이 들고 다니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상정해 놓고 그에 맞추어 제품을 만들어 갔다고 한다. 워크맨의 신화는 그런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보면 도외시하고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1941년말의 진주만 기습과 같은 대담한 작전도 당시 일본의 제반 여건으로부터 차근차근 논리적인 수순을 밟아 기안을 했다면, 성립될 수 없는 작전이었다. 물론 이후의 전개는 그들의 계획-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바램에서 멀어지고 결국 일본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는 했지만.




        80년대말과 90년대 초에 걸쳐서 소니에서 신제품 개발을 전담하는 조직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특별한 프로젝트나, 출퇴근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실험하고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팀에서 자유로운 실험을 통하여 소니의 혁신적인 신제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긍정적인 측면에서-90년대 초중반까지 소니는 특히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에게는 완벽한 기업이었다. 소니의 단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역린(逆鱗)을 범하는 것과 같이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내게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기존의 정통적인 조직조차도 파괴할 수 있다는 그런 극단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사실 다수의 기업들이 90년대 초중반에 그런 양태를 본받아 비슷한 형태의 조직들을  만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아직까지 뚜렷한 평가가 나온 적이 없다.

        

        90년대 중반 이후 몇몇 사람들이 소니 경쟁력의 원천은 내부의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를 했다. 제품과 기술의 융복합시대를 맞아, 제품사업부 간에 비슷한 제품을 놓고 경쟁이 벌어지는데,-예를 들자면 휴대용 PC를 가지고 컴퓨터사업부와 핸드폰사업부가 경쟁하는 식- 소니는 굳이 인위적인 조정 없이, 문자 그대로 내부에서 승리하는 검증된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나는 위의 얘기를 들으면서 2차 대전 때 일본의 패망까지 비상식적이고 부질없는 내부 경쟁에 몰두했던 일본제국의 육군과 해군이 생각났다. 위에 든 자유로움 그 자체의 개발 조직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정도 되면 어느 순간엔가 아마 새로운 기술, 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제품이 소비자, 고객을 넘어서 도그마처럼 소니 안에 자리 잡아버려 그런 모습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




        90년대 후반 브랜드와 실제 시장에서의 제품과의 차이를 얘기하면서 우리는 감히 소니를 예로 들었다. 소니라는 브랜드는 ‘혁신’을 뜻하고,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소니’와 ‘혁신’ 사이에 불가분의 연상작용을 일으키는데, 유감스럽게도 워크맨, 잘 봐 주어서 디스크맨 이후에 소니에서 혁신적인 제품은 나온 적이 없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이 브랜드의 원형에 원래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도 소비자가 인식하는 이미지. 그러나 실체가 제대로 따라 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소니에게는 과거 워크맨의 기억이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너무 높게 만드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억울한 측면도 있다.




        어쨌든 이번 인사를 한 마디로 ‘기술개발(Technology) 대신 외교술(Diplomacy)'를 선택했다는 뉴욕 타임즈의 평대로, 일본적인 경영의 ’화(和)'로써 포장된 경쟁력 제고의 한계를 보여 줌과 함께, 미국적인 외교술로의 전략적 변화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최고경영자의 인종이라는 흥미 요소를  떠나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리고 개인들을 위한 진정한 개전(個電)의 시대를 열었던 소니가 새로운 시대를 다시 한번 여는 그런 계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기술개발에 쫓겨 조금은 피로한 기색을 보이는 전체 전자업계에 그런 새바람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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