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하고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젊고 트렌디한 모습으로 치장하려 애를 쓰는 모정당에서 작년에 최고위원을 새로이 뽑는 행사를 가졌다. 우연히 TV 뉴스에서 한 후보가 연설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각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차례로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그 후보가 딴에 유머를 부리며 연설을 시작한다.




        “여러분, 여러분! 쇼를 하면 '남진'이가 맨 나중에 나오는 법입니다. 말하자면 스타는 젤 잘하는 놈이 젤 나중에 나오는 벱이라는 말씀입니다......”

근래 회사에 들어 온 친구들에게 ‘남진’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네 명의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한 친구만이 글쎄 '들어본 것도 같은 데'하는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간에 그 때 전당대회에 모였던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주류를 이루었던 대의원 청중들에게야 그래도 맘에 와 닿게 어필했던 구석도 있었을 게다.




        광고회사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하게 되는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새로운 광고주 혹은 기존 광고주를 놓고 다른 광고 회사들과 진검 승부를 가리는 경합 프리젠테이션이 되겠고, 다음이 연례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의 전략을 밝히는 보통 ‘애뉴얼(Annual) 프리젠테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이 된다. 작년 말 모광고주의 애뉴얼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며, 각 담당자에 따른 순서를 가리는데, 전체적으로 행사를 주도하는 광고팀장이 우리 팀을 가장 나중 순서로 미루면서 딴에 유머스럽게 얘기한다. “조용필이 맨 처음에 나오는 것 보았습니까? 피날레를 장식해야죠.” 그런데 소위 386의 끝자락까지만 피식거리고 웃고, 그 밑의 친구들은 그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나, 생뚱맞은 표정으로, 전체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제법 젊게 꾸미고, 신입사원들과도 잘 어울려 다니려 얘를 쓰는 친구였는데, 사람을 두고 하는 비유에서 본색이 드러나고 말았다.




        한때 HOT가 처음 나와 인기 휘몰이를 하던 시절, ‘에이치 오 티’로 딱딱 제대로 띄어서 발음을 하면 구세대고, 신세대는 ‘에쵸티’로 한다는 얘기가 유행했었다. 중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발음을 어떻게 하건 간에 전혀 알지를 못한다. 대충 중딩과 고딩을 나누는 기준으로 써먹을 만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농담조로 사람을 가지고 세대를 구분하는데 자주 들먹였던 인물 중의 하나가 ‘이기동’이란 인물이었다. 90학번 이전과 이후 세대를 가르는데, 이기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부가 잠수함 속 토끼의 눈처럼 아주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여럿이 모였을 때 물어보면 현재 나이로 30대 중반을 넘긴 친구들은 이기동 특유의 춤까지 흉내 내고, 우리의 90학번 이후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쳐다보곤 한다.




        이기동과 함께, 인물은 아니지만 세대 구분이라는 비슷한 명목으로 쓰인 게 ‘우주소년 아톰’이었다. 근래에야 우리나라 공중파에서도 방영하니까, 요즘 어린이들까지 잘 알고 있지만, 한동안은 유용했었다. 혹시 아톰을 안다고 하면, 왜 꼭 굳이 세대를 구분하려 했는지, 같은 시대 활약(?)했던 ‘황금박쥐’, ‘요괴인간’을 아냐고 물어보고, ‘벰’, ‘베라’, ‘베로’까지 들먹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70년대 초 어머니께서 두툼한 상하권으로 된 인물사전을 사주셔서, 그것 읽는데 한동안 푹 빠졌었다. 그 때 인물사전에 실린 사람들을 내 나름대로 가르는 기준은 일단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의 생사여부였고, 그 다음은 살아 있는 것으로 표기된 사람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출생연도가 19세기인지 20세기인지로 나누어,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면 아주 늙고 그래서 더욱 위대한 것 같은 ‘위인’으로, 20세기 곧 1900년 이후 출생인물이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슷한 격으로 보았었다. 어쨌든 19세기에 태어나신 분들이 그렇게 아주 멀게만, 역사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 당시 가끔 뵈었던 외할머니께서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생이시고, 그런 분들이 주위에 몇 분 계셨다.




        그런데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디케이드(decade)에 태어난 우리 애들에게 19세기에 태어난 이 분들은 너무나도 까마득하게 멀리 계시다. 두 세기 곧 200년이라는, 책으로만 겨우 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뒤를 잇는 세대에게 바로 20세기의 인물로 구분이 될 터인데.




        사실 ‘세기’를 구분의 단위로 삼는 것은 광고를 떠나, 요즘의 호흡으로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게 길다. 유치원생들끼리도 세대차를 얘기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인데-세계의 어린이 시장을 다룬 어느 책을 보니까, 미국의 한 유치원에서 갓 들어온 세 살짜리 꼬마를 보고, 여섯 살짜리가 ‘내가 너의 두 배를 살았다’고 얘기를 하며 한숨을 지더라나-, 우리의 10대들은, 초등학생들은, 유치원생들은 누구의 이름을 들먹이며 세대를 구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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