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2001년 멕시코시티의 어느 퓨젼 음식점에서 정말 시원하고 맛있는 마가리따를-바로 앞에서 바텐더가 만들어서 소금까지 발라 주는, 잘게 부순 얼음위로 천장의 선풍기 바람이 라임향을 코 앞으로 실어 보내는 멕시코 시티의 그 마가리따의 맛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서로 잔을 마주치면서 자리를 같이 했다. 어찌어찌 얘기를 하다가 정치 얘기로 화제가 흘러 갔다.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는데, 여소야대의 상황이라 뭘 좀 해 보려 해도 번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는 거야. 그래서 다수당인 야당과 타협을 하려고 하면 지지세력에서는 전 정권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개혁이 물 건너 갔다 들고 일어서고. 게다가 전에는 꼼짝 못하던 언론까지 그 동안 못했던 것을 보충하려는 듯 마구 거세게 물고 늘어지고, 야당은 은근히 부추기면서 이용하고 있는 형상이고. 인터넷시대에 새로운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바람을 불러 일으키려 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경제가 계속 내리막에 무역센터 사건까지 터지니, 경제도 좋지 않은 형편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빨리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으라고 야단을 치고, 기존 언론과 야당은 그것을 역시 부추기며 즐기고 있고. 의료개혁을 한다고 했는데, 국민 부담만 늘린 부분이 부각되어 또 원성이 높아졌고. 구시대적인 측근의 부정부패 행각은 심심치 않게 계속 터지고 있고, 또 언론과 야당에 의해 확대되어 전달되고. 그래도 아직까지 해외에서는 지명도나 평판이 괜찮은 편이야. 경제에 정통하고, 박식하고, 개혁적인 정책을 펴는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은데, 국내에서의 지지도는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참 심각한 상황이지."

 

  멕시코 출신의 브랜드 컨설턴트인 브루노 롱가리니(Bruno Longarini)는 오페라 가수라는 전직(前職), 그리고 정열적인 멕시코인답게 과장된 몸짓을 섞어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 대통령 얘기를 이렇게 했다. 얘기를 들으며 계속 미소만 짓고 있다가 나중에는 참을 수 없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더니, 그는 "그래, 멕시코는 참 웃기는 나라야. 이건 블랙 코미디야."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나도 거의 같은 원전에 기초한, 바다 건너의 배역만 다른 블랙 코미디 한편을 얘기해 준 유쾌 쌉싸름한 기억이 있다.-DJ정권 때의 정치 상황을 기억해 보시기를- 얼음이 씹히는 마가리따의 시원함과 소금의 짠 맛이 술 이 덜 깬 다음날의 숙취 두통과 어울려 몰려 든 느낌이었다.

  브루노 롱가리니는 아버지는 이태리인, 어머니는 멕시코와 이태리가 반반이다. 이태리 해군에서 복무하던 아버지가 2차 대전후 선원 생활을 하며 다니다가 멕시코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며 정착을 했단다. 어머니 쪽으로 보면 외할아버지는 이태리인이고 외할머니는 멕시칸이란다. 그러나 외할머니도 또 위로 올라 가면 수도 없이 섞여서 딱히 멕시칸의 정의를 확실히 내리기가 녹녹하지 않다. 물론 이 정도면 사실 멕시코에서는 양반 축에 낀다.

 

  브루노 롱가리니의 어릴 때부터의 고민은 자신의 브랜드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인즉슨 이태리에서도 한 동안 지내고 했는데 이태리에 가도, 그리고 멕시코에 가도 자기는 이방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가장 많은 이방인들의 나라인 미국으로 왔고, 브랜드를 확실하게 하자는 목적에서 브랜드 컨설턴트를 하게 되었단다.


 

 그는 원래 미국의 3대 명문 음악학교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는 오페라 가수로 활동을 했었단다. 그를 아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도, 그리고 술자리가 무척 흥이 올랐을 때 잠깐 들려 주는 아리아 한 토막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그걸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고학생으로 호구지책 아르바이트로 멕시코 회사들이 미국 진출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광고마케팅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았다.


  그렇게 하다가 광고와 마케팅의 관건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고, 결국 그것은 음악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음악에서는 단지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추구할 뿐이다. 그래서 광고 쪽으로 길을 들어섰고, 앞에서 썼다시피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목적과 연계되어 브랜드 컨설팅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는 나의 두 번째 멕시코 방문 기간 중에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멕시코 시장 조사 기획 및 제일기획 멕시코 진출의 타당성 검토작업의 일환으로 멕시코의 광고계와 브랜드 업계 전반을 파악하기 위하여 뉴욕에 있는 친구를 통해 당시 미국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멕시코 책임자로 나와 있던 그를 소개 받았다. 당시 조사업체를 알아 보고 직접 주선을 해주고, 멕시코 매체 시장 및 세그멘테이션에 관한 자료를 주어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무엇보다도 서두에 쓴 것과 같은 대화를 통하여 일반 조사 자료로는 파악할 수 없는 멕시코인, 멕시코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브루노 롱가리니는 2002년초 자신의 학생 시절의 전공과 사회 생활에서의 전문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자리를 찾아서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름하야, "Sonic Branding". 기본적으로 어느 브랜드에 가장 맞는 소리를 만들거나 찾아 주는 일이다. 보통 Sonic branding의 대표적인 예로 인텔(Intel) 광고 마지막의 '딩동댕' 비슷하게 나는 소리를 들곤 하는데, 광고 뿐만 아니라 응용 분야가 무한정으로 널려 있는 분야가 바로 Sonic branding이다.


 

  대학생 친구들에게 "광고 회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어떤 전공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 친구들에게 이 브루노 롱가리니의 얘기를 해준다. 오페라 가수 출신의 광고인, 브랜드 컨설턴트. 음악과 광고의 접점을 찾아 이룬 인생 전환과 그리고 다시 자신의 전공과 접목시키는 절묘함.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기본이다. 접점, 연결점을 찾고, 그를 가지고 다시 묶고 쬬개 보는 것이 바로 브랜드의 기본이다.


  멕시코 이야기 사족(蛇足). 멕시코 삼성전자의 친구와 함께 전자매장들을 둘러 보았다. 기본적으로 수입에 따라 매장 등급이 확실하게 매겨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 매장 가는 길에 멕시코시티의 악명 높은 빈민가를 지나게 되었다. 동행한 멕시코 친구는 시내에서 구걸하거나 차도로 뛰어 올라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지나치면서는 "Oh, those poor people"을 동정과 연민이 가득한 목소리로 한숨과 함께 내뱉더니, 그 빈민가에서는 다급하게 "창문 닫고, 문 잠가!"하면서, 겁먹은 경계의 표정을 내내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 와서 주재원들과 얘기해보니까, 그 동네를 지나쳐 본 사람조차 없었다. 그 멕시코 친구에게 매장을 둘러 보는 일도 그렇고, 특히 멕시코 시티의 다른 면을 보여 주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멕시코시티에 살았는데, 네 덕분에 거기에 처음 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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