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사진

 

        느닷없이 처(妻)가 아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우리 집 홈페이지에 실었다. 내밀한 가족과 친지들만이 나누는 공간의 얘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낯 뜨겁기도 하지만, 광고를 하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그 느낌과 함께 싣기로 했다. 처의 글을 인용하기 전에 원저자에게 허가를 구했고, 원저자는 약간의 불만과 함께-“이왕 인용 부탁을 하려면 좀 공식적인 태도로 했으면 좋겠는데”하면서- 허락하여, 고마움을 전하며 인용을 한다.

----------------------------------------------------------------

 

 

T.V. 책을 말한다’라는 프로를 가끔 즐겨봅니다. 오늘 소개한 책 중에 <내 마음 속 사진첩에서 꺼낸 이 한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소설가, 시인 29명이 사진 한 장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이었습니다. 재밌게 보다가 저도 생각나는 사진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진행자중 한 사람이, 사진을 보면 예전에는 사진 속의 인물이 예쁜가 아닌가만 보았는데, 이제는 그 주변 것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전 이 말에 “맞아, 그래”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 속의 저는 너 댓 살 정도 되어 보입니다. 코는 납작하고 볼이 통통한 평범한 여자아이로 별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모습 뒤로 아빠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네요. 활짝 웃는 입만 보이지만, 장난을 치고 있는 어린 딸을 보는 그 눈길이 느껴지고 그 모습이 좋고 환한 미소가 상상이 되어서 제 책상 유리에 오래전부터 끼워져 있었던 것입니다.(혹시 아빠가 절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뭐, 상관없습니다.)





 

아빠는 집안일에 시시콜콜 참견하지 않는 우리 세대의 다른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중요한 몇몇 대목에서 길을 잡아주시고 끌어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기억나는 것 하나. 중국에서 공부를 하다 미국으로 급히 가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때 전 박사 자격시험을 봐야하는 상황이었지만, 공부하기가 여의치 않아 미국에서 돌아와 시험을 봐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빠는 “왜, 준비해서 그냥 봐봐라. 이제 미국 가면 5년이다. 떨어지더라도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하시면서 강력하게 시험을 권유하셨죠. 저희 과는 이 자격시험이 녹록치 않기도 하고 자꾸 떨어지는 건 보기에도 안좋아서 아예 볼 생각도 안했던 거죠. 아빤 공부에 관해 그다지 관여를 안 하셨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셔서 이삿짐 싸면서 책 보고 출국하기 며칠 전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험을 쳤습니다. 결국 미국에 가서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죠. 만약 그때 시험을 안 보았더라면 박사는 흐지부지 되었을지도 몰라요. 아빠는 이처럼 저에게 늘 제 뒤에 든든히 계시면서 저를 지켜봐 주시는 분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진 속의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어린 딸을 보고 계셨을까요? 딸의 미래가 어떻기를 바라셨을까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딸을 아직도 저 사진 속의 아이로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요? 오랜만에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게 됩니다.

-----------------------------------------------------------------

 

사실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도 비슷하게 얘기를 하지만, 너 댓 살 되는 아이의 사진으로 이런 사진은 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왼쪽 구석의 활짝 웃는 어른의, 바로 주인공의 아버지의 웃음 진 입을 얘기하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리고 그냥 사진을 보고 지나쳤을 몇몇 사람들은 장난치고 있는 어린 주인공을 다시 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제품의 광고를 만든다고 할 때, 그 시작은 보통 광고주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대부분의 우리의 광고주는 제품의 온갖 우수한 특성을 얘기하고, 제품이 주인공이 되는, 바로 제품이 광고의 중심에 딱 자리를 잡고 그런 특성들에만 초점을 맞춘 그런 광고들을 요구한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여 광고를 만드는 쪽에서도 광고주의 요구에 맞추어 찍어 내듯이 만들어 낸 광고물들이 소위 팔기가, 설득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야 불문가지이다. 

 

홈페이지에서도 얘기한대로 가끔씩 주셨던 충고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듯이, 너무 공식대로의 생각했던 대로의 메시지는 대부분의 경우 기대했던 역할을 해내기가 힘들다. 혹시 우리는 광고를 떠나서도 어느 한 가지,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것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놓치고 있지 않은지, 너무 중심부에만 몰려서 주변의 것들에는 전혀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씩은 되돌아 보고ㅡ 거기에서부터 한 번 실마리를 풀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