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인물 작명과 제품 브랜드 만들기




        조정래 선생은 장편 소설 “한강”의 후기에서 그의 장편 3부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 짓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얼추 1,200여 명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리 한 장면만 스치고 지나가는 단역이라 해도 그 이름이 전 작품 그 누구와 같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나는 작명소를 차려도 될 만큼 사람들 이름을 많이 짓기도 했다. 그런데 이름을 짓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물의 성격과 이름이 딱 부합되어야 하는데, 어딘가 그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한나절 이상을 글 한 줄 못 쓰고 끙끙댄 적이 여러 번이었다.’




        사실 선생의 장편 소설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가 바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등장하는 만화경과 같은 인물들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은 보통 인물들이 나타나는 배경과 함께 외모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시작된다. 조조연급의 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




‘권회장이 찾아간 곳은 남산 아래 필동 끝자락에 붙어 있는 판잣집이었다. 곧 쓰러질 것처럼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는 판잣집은 마치 기차의 객차처럼 창이 많고 길었다.(중략) 그곳은 다름 아닌 넝마주이들의 집합소였다.(중략) 서른 중반의 그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땅딸막한 몸집에 기운깨나 생긴 그 남자의 얼굴에는 선한 웃음과 함께 어떤 강단진 기운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 인물의 이름과 부가적인 설명을 앞서 등장한 다른 인물을 통해서 한다. ‘우리 이용진 사장 선친께서는 만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어요.’




        이용진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어렴풋이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윤곽을 상상한다. 이름 석 자는 그야말로 그 어렴풋한 이미지를 하나의 독립적인 형태로 만들어내고, 이후 그 인물의 소설 속의 행동들은 그 형상과 성격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딱 들어맞는 이름이 나오지 않아 끙끙대었던 선생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배경과 외모 등, 위의 경우에서는 ‘선한’ 혹은 ‘강단진 기운’이라는 주관적인 설명까지 곁들여, 독자들은 이미 인물의 이름이 나오기 전에 최면에 걸리다시피 하고, 이름에 대해서는 성격과 딱 부합한다고 느끼게 되기 쉽다. 물론 그러한 최면 자체가 작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에 끌려 들어간 독자에게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이름 자체가 풍기는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천두만’, ‘허진’, ‘유일민’, ‘서동철’의 이름들에서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의리를 중시하면서도, 권력에 줄을 댈 줄도 아는 막강 싸움꾼인 통뼈 깡패’, ‘원죄처럼 자기를 얽매는 공산주의 운동가 아버지 때문에 능력을 펴지 못하고 좌절하는 지식인’,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가난 때문에 일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철공소 등을 전전하며 고학 끝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마치고, 결국은 냉철한 회사원으로 변신하여 세속적으로 출세하는 인물’, ‘가족들은 전라도에 두고 홀몸으로 상경하여, 온갖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땅뙈기 마련할 돈을 벌어 고향으로 내려갈  꿈을 버리지 못하는 천상 농사꾼’. 이런 설명만 가지고 이름자와 연결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꼭 그 이름이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위의 예에서 통뼈 깡패의 이름이 꼭 서동철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한강 소설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인물 중의 하나인데 나는 소설을 읽은 후, 이번에 다시 이름을 찾아보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서봉철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이 인물의 성격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름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지 않은가? 내 자신이 조정래 선생의 얘기에 슬슬 끌려가면서 이름 자체는 동철이건 봉철이건 괜찮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실제 제품의 이름을 짓는 과정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제품의 성격이 어떠하고, 어떤 쓰임새를 차별적으로 가지고 있는가를 고려하여 몇 가지 방향을 잡고, 방향에 맞추어 후보작들을 만들어 내고, 몇 차례의 리뷰를 거쳐서 2~3개의 최종 후보작으로 좁혀서 결정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설 속 인물 작명과 근본적인 차이는 광고주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광고주의 오리엔테이션이 있고, 그를 기초로 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 대한 허가를 얻어야 하며, 또 후보작들에 대한 리뷰와 마지막 최종 후보작들 중 광고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어서, 소설가의 거의 자기 내부 완결형에 가깝게 처리하는 인물 작명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조정래 선생이야 평생의 반려자인 김초혜 시인에게 몇몇 인물의 이름에 대해 의견이야 물어보셨겠지만, 허가를 얻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문제는 아무리 우리가 아주 논리적이거나 그럴 듯한 이유를 대고, 우리가 내놓은 이름들의 적합성을 얘기하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광고주 핵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AT&T의 Bell Lab이 루슨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y)로 독립할 때, 브랜드 작업에 참여한 미국 친구가 들려 준 얘기에 의하면, CEO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역진들에게 후보작 두 가지를 발표했는데, 루슨트에 대한 평가는 부정 일색인데 비해서, 다른 후보작에 몰표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CEO가 들어와 아무 사정 모른 채로 “루슨트, 괜찮은데”하는 한 마디를 뱉으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어 루슨트로 결국 확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주관적이고, 거기에 사내(社內)의 정치가 반영되기도 한다.




        제품의 경우 이름이 선택된 이후에도 잠재 고객을 포함한 소비자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고,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이해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스스로 알아서 책을 선택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 들며, 흐름에 맞추어 독자가 인물을 그려내는 소설에 비하여, 제품의 이름은 주로 광고 혹은 매장에서 피동적으로 눈에 띄고 귀에 들려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품 이름을 잘못 지어서 망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제품의 이름 덕분에 성공했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찾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제품의 이름이 공헌한 것인지 헤아려 낼 수가 없다. 광고 효과라는 것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소설에서도 잘 지은 인물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 소설의 성공에 공헌하는지 모르겠지만, 인물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소설 자체를 망가지게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제품 브랜딩 작업에 관여를 많이 했었는데, 요즈음은 위에서 든 것과 같은 어려움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있다. 와중에 조정래 선생의 작명에 얽힌 어려움을 토로한 것을 보고, 나름대로의 이 분야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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