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숫자의 이면(裏面)을 보자




        지난 2월 11일 모신문과 모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효(孝)에 관한 의식조사 결과가 해당 신문에도 제법 큰 지면을 차지하며 실리고, TV방송에서도 그 결과를 뉴스 시간을 통해 보도하였다. 그런데 수치상으로 나타난 결과들이 필자가 직접 진행했던, 또 다른 곳에서 실시한 유사한 조사들과 결과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그 비교와 함께 조사 결과를 읽을 때와 실제 조사를 수행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고자 한다.




        “효도-마음은 굴뚝같은데 손발이 안 따라주네”라는 헤드라인 아래 ‘효에 대한 생각은....’이란 작은 타이틀로 세 가지 설문의 결과를 실으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녀는 효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 부모 부양은 자녀 책임--------------86%

        . 자녀 결혼 후 부모 모셔야----------- 87%

        . 부모 모셔야 자녀 인성에 도움-------- 95%




        실제 질문의 경우, 첫 번째 질문만 예가 나와 있는데, ‘부모 부양은 자식의 책임이자 의무라는데 동의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네, 아니오’로 이분법으로 물었는지, 5점 척도로 해서 동의한 정도가 4점이나 5점, 즉 ‘동의한다’, ‘매우 동의한다’에 응답한 사람들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7점 척도로 했는지 등이 명확하게 기사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5점 척도를 많이 쓰고, 이런 질문에 대해 양자택일식으로 묻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아래에 인용할 다른 조사들과 같이 5점 척도를 썼다고 가정했다.




        제일기획에서 매년 실시하는 “한국인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있어서 그 결과를 찾아보았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에 동의정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97년부터 3년 단위로 보았는데, 예상대로 동의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 97년 : 52% -> 2000년 : 49% -> 2003년 : 43%




        비슷한 종류의 몇몇 광고대행사들이 연합으로 실시하는 다른 조사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는 ‘더’라는 단어 하나가 더 들어갔는데 이에 대한 동의율은 제일기획의 조사보다는 높았지만, 이번 모신문사의 조사보다는 현저히 낮았다.

        . 97년 : 71.7% -> 99년 : 65.0% -> 2001년 : 57.7%




        이런 차이가 난 이유를 살펴보자. 모신문의 조사는 기사에서도 얘기를 하는 대로 ‘효처럼 윤리적 주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응답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기사에 따르면 ‘가정 방문을 통한 1:1 개별 면접’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부담스런 질문을 집에서 조사원 얼굴을 빤히 보면서 해야 되면 당연히 동의율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제일기획의 조사는 연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종합 라이프스타일 조사이다 보니, 질문의 양이 무척 많다. 질문지가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에 가까워, 양 때문에 힘겨워 하는 응답자들이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예민한 질문들에 대해서 소비자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느낀 그대로 대답할 확률이 높기도 하다. 예민한 부분이 묻혀서 지나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를 든 조사의 경우는 역시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 조사이기는 하지만, 질문의 분량이 제일기획만큼 많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굳이 분류를 하자면 중간쯤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몇몇 대행사들의 연합조사 설문 중 이런 항목이 있었다. ‘시설만 좋다면 부모를 양로원에 모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92년부터 2001년까지의 기간 중에 가장 큰 변화를 보인 항목이었다. 92년에 동의율이 16.3%에 불과하던 것이 2001년에는 40.8%로 늘었다. 위에서 본 ‘보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에 60% 가까운 사람들이 동의를 했는데, 이 항목에 40%의 동의를 보인 것을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까?




        모신문사의 조사 중 계속 의문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만약 자녀와 함께 살아야 할 경우에 누구와 살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응답 결과가 나왔단다.

        .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 없다 : 68%

        . 장남이라야 좋겠다         : 20%

        . 아들과 사는 것이 좋겠다   : 12%




‘딸과 사는 것이 좋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정말로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추측컨대 백분율이 딱 맞는 것으로 보아, 위의 세 가지만 보기로 제시하였던 것 같다. 딸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들이든 딸이든’에 뭉퉁 그려 들어간 셈이다. 이는 설문의 작성자가 상당히 전통적인 남성 중심주의 시각에 젖어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전통적인 효 의식에 대한 응답이 다른 조사와는 달리-조사의 방법은 차치하더라도- 높게 나오도록 은연중에 유도하였는지도 모른다.




        신문에 설문조사 결과가 인용된 기사나 통계 수치가 실리지 않는 날이 드물다. USA Today와 같은 신문은 아예 그런 통계나 설문조사 결과를 싣는 고정란이 있다. 설문조사에 따른 수치를 내밀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광고를 만드는 데 뿐만 아니라, 파는데, 곧 설득하는데 조사를 많이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설문조사가 남발되고, 조사 결과 자체가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그 권력을 깨고 보다 객관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드러난 결과를 상호비교해보고, 조사 방법부터 그 이면을 파헤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H.카가 역사가를 알고 그 사람의 역사서를 읽어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조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가는 것이 설문 결과를, 통계 수치를 읽는 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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