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과 광고의 리듬과 상징




        지난 1월 한 달 동안 조정래 선생의 대하장편소설인 “아리랑”과 “한강”을 읽었다. 선생의 “태백산맥”을 90년대 초에 읽고, 뒤를 이은 두 작품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연재되는 것은 띄엄띄엄 보고 있었는데, 차분하게 읽을 시간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아마 “태백산맥” 이후로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 같다. 여느 회사원들이 변명하듯이 일에 쫓겨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15초 안에 모든 것을 보여 준다는 광고라는 일의  특성상, 장편소설과 같은 그런 긴 호흡이 거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갑자기 장편소설을 다시 읽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2004년 한국 출판시장의 최고 히트작이라는 “다빈치 코드”였다. 지난 12월초 뉴욕 출장을 가면서, 인천공항에서 페이퍼 백으로 상대적으로 아주 싸게 나와 있길래 싼(?) 맛에 샀다가, 출장 기간 동안 전혀 읽지 않은 채 가지고 와서 서가 위에 던져 놓고 있었다. 12월말과 1월초에 걸쳐서 광고대행사 간의 경합과 연례발표가 몰리면서, 잠깐잠깐이라도 머리를 쉴 수 있는 휴식처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꺼리를 찾으면서 “다빈치 코드”를 집어 들게 되었다.




        중반까지의 “다빈치 코드”는 문자 그대로 ‘참을 수 없는 유혹’ 그 자체였다. 근무 시간 중에도 짬만 나면 살짝살짝 펼쳐 보았고, 집에서는 거의 그 책만 들고 있었다. 그런데 중반 이후를 넘어가자-프랑스에 사는 시니컬한 영국 귀족인 Sir Leigh Teabing이라는 작자가 나오는 대목부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책의 리듬을 쫓으며 휘둘린 것 같아서, 조금씩 거리를 두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이 그 책에 홀려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다빈치 코드”가 영화화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확실히 바로 영화 화면으로 옮길 수 있는 또는 영화에서 쓰이는 기법들을 상당히 많이 가져다 썼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책 뒷 표지에 실린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일간지 중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의 추천 평이 블록버스터와 이 책이 함께 가지고 있는 특성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수 많은 반전(反轉)들-감탄과 경악의 연속....이 소설을 읽으면서 당신의 맥박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면, 바로 건강검진을 받으십시오....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한 움베르토 에꼬의 작품-흥미만점 (SO MANY TWISTS-ALL SATISFYING, MOST UNEXPECTED....Let's just say that if this novel doesn't get your pulse racing, you need to check your meds....This is good fun-Umberto Eco on steroids.")




        피플(People) 잡지에서도 긴장감과 반전의 효과에 주로 초점을 맞춘 얘기를 했다. ’가슴 조이는, 두뇌 게임의 진수....스마트한 쓰릴러의 새로운 거장으로 등극한 댄 브라운("A PULSE-QUICKENING, BRAIN-TEASING ADVENTURE...[BROWN IS] A NEW MASTER OF SMART THRILLS.") 개인적으로는 움베르토 에꼬 작품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 작품들의 동기가 되면서, 또 작품을 통해 제기하는 철학과 역사 인식에 대한 깊이가 떨어지는 가운데, 작품이나 독자들의 심장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는 스테로이드는 확실히 심하게 주입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단 며칠 간의 얘기를 105개의 챕터(Chapter)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근 500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으로 만들었으니, 독자나 작가나 숨이 가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나는 “다빈치 코드”가 프롤로그의 루브르에서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던 시각부터 시작하여 정확하게 며칠 동안 불쌍한 하버드대의 교수와, 피살자의 손녀이자 프랑스 경찰의 과학수사관인 미모의 여성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감과 동시에 쫓겨 다녔는지, 위에서 얘기한 중간부분부터 날자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105개의 챕터는 영화에서 그대로 105개의 주요 장면으로 옮겨 간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면 당-소설로는 챕터 당- 1분씩만 잡는다고 하더라도 바로 상영시간이 두 시간에 가까운 영화가 된다. 챕터 안에서도 나름대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내가 15초 짜리 광고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도 딱히 직업 때문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휴식처를 찾았는데, 거기서 보통 하는 작업과 같은 부산스러움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심하게 벌어지면서, 더 긴 호흡을 찾아나서 떠오른 것이, 제일기획 도서실 한 켠에 꽂혀져 있던 조정래 선생의 대표 대하장편 3부작이었다. “아리랑”과 같은 경우는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초기 해외 이민자들의 생활을, 하와이, 연해주, 만주, 일본, 미국 서부 지역 등의 드넓은 지역에 대한 탄탄한 취재와 자료 연구를 통하여 실감나게 재구성한 것이 더욱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강”은  윗 어르신들의 체험을 직접 전해 들었던 것과 함께, 상당 부분은 내 자신이 거쳐 왔고, 기억에 남아 있는 시대였던 지라 실감 나게 읽었다. 




        무엇보다 유장한 호흡이 근 10여 년만에 장편소설을 찾았던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한강”의 경우 50년대 후반부터 80년 초까지 30여년에 걸친 시대를 다루고 있고, 전체 10권으로, 총 페이지 수가 3천여장에 이르지만, 단지 57개 챕터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57개의 사건이라는 퍼즐 조각들을 통하여, 각 시기 시기의 대표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30여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성격까지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굳이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주절주절 길어서는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광고 물량이 많아서, 사람들 눈에 많이 노출이 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똑같은 광고가 계속 노출되다 보면, 정말 마술처럼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람들의 그 광고에 대한 인식과 지각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광고를 보기는 보는데, 어느 기업의 어느 브랜드 광고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건성으로 보게 된어 결국은 광고 자체에 대한 인지도까지 떨어지는 효과를 가져 온다. 그야말로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스테로이드는 마치 항생제처럼 계속 더 많은 양을 주입시켜야만 예전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광고로 얘기하면 임팩트, 차별화만을 노리다 보면 자꾸 강렬한 시각적 효과나 자극적인 어휘 등을 택하게 되는 꼴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광고 대상은 없어지고 어휘나 특정 시각적 이미지만이 남게 되기 십상이다.




        어느 특정한 단어나 장면의 의미가 단일한 맥락에서 최대한으로 확장될 수 있게 만드는 상징성이 광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57개의 장면으로 30여년, 격동의 세월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담는, 상징성을 통한 의미의 그릇 넓히기; 조정래 선생으로부터 배워야 할 대목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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