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 Not Shoot the Pianist. He Is Doing His Best."

 

큰 광고회사에 있으면 있을수록, 무릇 광고를 하려면 꼭 소비자조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그 결과에 맞추어 전략을 세우고, 제작팀이 달라붙어서 여러가지 안(案)을 예쁘게 꾸며내곤 하여야만  한다는 선입관에 젖기 쉽다. 그런 절차를 강조하면 할수록, 광고에서의 혼(魂)이랄까 하는 것은 느끼기 힘들기 마련이다. 광고를 의뢰하는 입장에서는, 광고만 가지고 모든 목적을 이룰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고회사를 압박하려는 의도이건 아니건, 광고에 촛점을 맞추어 얘기를 해서 그렇겠지만, 광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기대를 처음에는 희망사항으로,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말 그렇게 바라게 된다. 광고를 만드는 쪽에서의 기존 절차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여유, 광고를 의뢰한 쪽에서는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여유를 바란다.

 

             “제발 피아니스트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 그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위의 제목은 1882년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미국 강연 여행중, 골드러쉬로 떠들썩했던 미국 콜로라도주의 리드빌(Leadville)이란 마을의 한 술집에 들렸을 때 보았던 그 집의 피아노 위에 걸려 있던 안내문(?)이라고 한다. 가끔 옛날 서부영화에서나 보았음직한 얘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마을, 특히 그 술집에서 총 맞아 죽은 피아니스트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 간절한 호소를 보고, 오스카 와일드도 서툰 강연을 하다가는 자신도 총 맞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잔뜩 겁을 먹었었다고 그의 미국여행기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벌이는 퍼포먼스! 예전 중국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아버지 조조(曺操)의 死後 형인 조비(曺丕) 앞에서 자신의 詩才를 목숨을 걸고 보여주어야 했던 조식(曺植)과 그 산물인 "칠보시(七步詩)". 조식이야 갑자기 끌려와 자신의 형만을 대상으로 일생일대의 詩作 퍼포먼스를 하였지만-워낙 상황이 드라마틱해서 그렇지, 시 자체의 예술성은 조식의 다른 시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진다-, 불쌍한 피아니스트는 술집에 오는 다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즐거움을 주기 위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부수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까지 하여야 되는 지경이다. 안타깝고 가엾기는 하지만, 위의 안내문 자체가 현재 우리의 기준으로 간단히 분석해보면, 하나의 광고 행위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최종목표: 살아남기,

광고의 직접적인 목적: 피아니스트에 대한 총격 방지,

목표고객: 총을 소지한 술집 손님

메시지 내용: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간절하게 호소

방법: 사격을 위하여 겨냥할 때 노출될 수 있도록 피아니스트 머리 위에 게시" 등등

 

그런 안내문을 써붙인 것이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 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단지 1882년이란 시기를 감안할 때, 오스카 와일드가 그 술집에 들른 이래로 피아니스트에 대한 총격 발생율은 사법 체제의 정비, 골드러쉬 열기 감소 혹은 안내문 광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 갔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렇지만 그 감소율의 어느 만큼이 안내문, 즉 광고의 덕인지는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바로 광고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가 총을 맞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연주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안내문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연주 실력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의무도 지게 된 것이다. "연주는 훌륭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총격을 정당화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를 공표한 것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안내문을 써 붙인 이후로 발생한 총격에 대해서는, 아마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일정 부분 책임을 같이 져야만 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에 대한 총격 발생율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라도 현상공모해서 돈이 결부되었고, 그에 대한 경쟁이 붙었을 경우는 아마 안내문 아이디어를 낸 자는 획기적으로 총격율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책임까지 떠맡았을 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광고대행사에서 지금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광고인들이 많을 것이다. 어느 광고잡지에서 본 만평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미국 친구들도 이곳 미국광고계에서도 보편적인 일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광고주가 시안 몇 개를 프리젠테이션한 광고대행사 사람에게 선언적으로 얘기한다. "Ok, I make a decision, and you take all the blames(결정은 내가 내리지만, 모든 책임은 당신이 지는 거야)."

 

너무 비아냥거린 것처럼 보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든 광고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총을 쏘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을 직접 벽에 붙이는 피아니스트와 같은 간절한 심정으로 작업 하나하나에 임해야 한다. 조치훈 9단이 "목숨을 걸고 둔다"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무리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비장함을 가끔은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번 광고의 목표는 시장점유율을, 혹은 인지율을 어느 수준까지만 가져가는 거야' 하는 경우에 그런 비장함을 기대하기는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제품, 기업, 사람 모두에게 각자에게 합당한 몫이 있고, 그에 따른 적합한 행동 거지가 있다. 닷컴 붐이 한창이던 1999년 1/30의 슈퍼볼에 공시적으로 17개 닷컴회사들이 최소 2백만$ 이상을 투자하며 광고 활동을 전개했다. 6개월이 지난 후, 그중 한 개 회사는 아예 망했고, 9개 닷컴은 슈퍼볼 당시의 광고대행사와 계약을 해지하든지, 광고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말 현재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광고 대행사가 슈퍼볼로 자신의 닷컴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Over-promise를 하지는 않았을까? 모든 책망, 책임을 광고  대행사가 진다고 하더라도, 총맞고 쓰러지는 것은 안내문을 쓴 자가 아니라 피아니스트이듯이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것은 광고주이다. 그런 면에서 서로서로 '오바' 약속, '오바'기대하지 않는 그런 광고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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