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배우는 광고(1)-살아 있는 영어하기




1998년말부터 미국 출장이 잦아지기 시작하여, 1999년 2월 부터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고, 서울에는 잠깐 잠깐 옷 갈아 입으러 가듯이 들렸다. 그러던 와중 6월 중순에 갑자기 미국 뉴욕의 주재원으로 가는 것이 논의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공식적인 발령이 나고, 비자 수속에 들어가서 비자가 나오자마자 비자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9월초에 처와 두 아들들을 이끌고 미국 땅에 닿았다. 큰 애의 학기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급하게 모든 것이 진행되는 와중에 특히 신경이 쓰였던 것 중의 하나가 애들, 특히 만 5년 10개월로서 미국에 가자마자 공식 의무교육기관인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큰 애가 걱정이 되었다.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사교성이나 배짱 같은 것이 좀 부족한 성격이라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워낙 큰 놈 걱정이 크다 보니, 만 세 살이 갓 지난 작은 애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큰 애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고, 미국 가기 전에 두 달 정도 일주일에 두 번씩 미국인 선생을 불러 아주 기본적인 영어 회화를 가르쳤다. 그리고 틈만 나면 기본적인 표현들을 한국어와 영어로 얘기해 주었다.




딴에는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큰 애는 초반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사실 대부분의 애들이 국내에서 전학만 가도 적응하는데 애를 먹는데 언어까지 다른 이국에서야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겠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가면서 애는 어느 정도 말이 트이고, 그에 따라 학교 생활에도 제법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애는 한국인이 하는 유아원을 다녔다. 영어는 제 형의 친구들이 집에 올 때나, 교포 어린이들과 어울리면서 부모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가운데, 눈치껏 주워 듣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 온 지 약 3개월 정도가 지나, 교포 친구들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를 우리 집에서 가졌다. 교포 가족 중에 까불기 좋아하는 꼬마가 하나 있었다. 그 꼬마가 워낙 나대니까 또 다른 꼬마가 “John is crazy!"하면서 제 엄마에게 이르듯이 소리를 쳤고, 그에 맞추어 우리 애들을 포함하여 꼬마 애들이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 애들이 제대로 알고 웃나 궁금해서, ‘John is crazy'를 한국어로 무어라 하는지 물었다. 큰 애 왈, ’죤은 미쳤어.‘ 그래, 맞는 말이지. 그런데 작은 애는 ’죤은 못말려‘하교 얘기를 한다.




그 즈음하여 가족들과 맨하탄에 갔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사달라는 작은 애의 외침을 무시하다가 지쳐버린 엄마가 ‘그래, 사줄께’하니, 작은 애가 신이 나서 춤을 추면서 길거리를 활보했다. 지나면서 어느 흑인이 그 모습을 보고 흑인 특유의 발음으로 ‘Hey, what's wrong with you, man?'이라고 웃으며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애들에게 ’저 아저씨가 뭐라 하셨지?‘하고 묻자, 큰 애는 ’야, 너 뭐 잘못됐니?‘, 작은 애는 ’야, 너 왜 그러니?‘란다.




큰 애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우리들에게 그 간단한 문장을 주면서 해석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큰 애처럼 해석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에 가깝게, 상황에 맞추어 뉘앙스까지 살려서 해석을 한 것은 작은 애였다. 우수개로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는 한국인에게 미국 경찰이 “How are you?"라고 물어보니까 충실하게, 배운대로 ”I'm fine. Thank you. And you?"까지 했다는 한국인의 얘기처럼, 우리는 정말 교과서 그대로 열심히 따라 한다.




비슷하게 영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는 영국 생활 초창기 어느 날 아들내미가 갑자기 “아빠, ‘조용히 해’가 영어로 먼지 알아?”하고 물어 봤단다. 우리의 선배는 당연히 “Be quiet!"라고 대답을 했는데, 아이의 말인즉슨 그것이 아니고 ”Be sensible!"이라고 얘기를 하더란다. 애들이 떠들고 소란을 피니까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그러니까 애들이 좀 조용해지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애들과 영국 주재원 선배 얘기를 소위 광고주들을 만나면 자주 한다. 새로운 얘기를 할 때마다 “소비자조사 해봤어?”,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데?”하는 얘기에 신물이 날 때마다 위의 예를 들면서, 조사는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강조를 하면서, ‘crazy'를 ’미쳤다‘가 아니라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조사는 누구나가 한다. 문제는 조사 결과를 어떻게 자신에 맞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그렇게 새로운 해석을 할 때, 조사 자체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그것이 된다.




‘광고는 과학이야’하면서 모든 것을 수치로 들이미는 이 세상에서, 정말 다른 것들과 달리 소비자의 가슴을 울리려면, 그런 수치를 넘어선 가슴을 때리는 한 단계 위의 해석이 필요하다. 세상을 숫자로 법칙화하려던 서양의 물리학자들이 이제는 동양철학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는데, 우리의 광고세계는 아직까지 ‘Crazy=미쳤다’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움에 우리 애들 얘기까지 들먹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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