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쪼가리 하나 만드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죠?'라고 물어 본 사람이 있었다. 그런 질문에 침대 뿐만 아니라 광고도 과학이라고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숫자놀음에 빠져든다. 숫자가 얘기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찾는 작업이 광고의 시작이자 끝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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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초 겨울바람의 끝자락이 아직도 매섭게 맨하탄 구석구석을 파고들던 늦은 겨울인지 이른 봄인지가 헷갈리던 어느 날, 나는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 앞에서 다리를 모으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잘못한 학생처럼 앉아서, 야단치듯 내뱉는 말씀을 듣고 있었다.




 "이봐, 나는 코카콜라를 마시면, 까만 설탕물에 쓸 데 없는 기포나 생기고 목을 넘어 갈 때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니 많은 사람들이 목에서 기포 생기는 것이 바로 '청량감(Refreshment)'이라고 얘기해. 그런 것을 브랜드라고 얘기를 하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야"하면서 당시 미국 유수의 조사회사인 'Audit & Survey'의 CEO인 Solomon Dutka박사는 너희들이 제대로 브랜드의 개념을 알고 왔느냐는 듯이 우리에게 힐난조의 훈계를 늘어놓고 있었다.




 처음 그 사무실로 갈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조사의 목적도 불분명한 채 한 번 가서 얘기나 들어 보자며 미국 친구 하나와 길을 나섰었다. 어차피 조사를 맡기는 것은 우리 쪽이니, 우리가 고객이고 조사회사 애들은 어떻게 하든 조사 거리하나 엮으려 노력을 할 터이니 편하게 가자며 아무런 준비 없이 거만스럽게 그 사무실로 들어섰다.




 'Audit & Survey'사 자체가 상당히 큰 회사인데, 인상이 고약시럽다면 고약한 CEO 할아버지가 직접 나와서 약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함을 감추려다 보니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더욱 당황한 모습을 역력히 드러내게 되었다. 그렇게 개념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우리를 보다 못한 할아버지 Dutka박사가 참다못해 입을 열며 시작한 말이 바로 위의, 브랜드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개념이었다.




 어물쩍 우리의 무지함을 감추려는 듯이 우리가 그래도 조사를 해야겠다며 고객으로서의 지위를 내세우려 하자, 그는 "이보게들, 조사해서 숫자 몇 개 알아낸다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야. 근본적으로 어떤 것들을 먼저 해야 하는지 생각들을 해야지"하면서 약간은 톤이 누그러져 안타까움이 배여든 어투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1923년생인 그는 원래 물리학을 전공했다. 1940년대초, 2차대전을 전후한 미국의 물리학계하면 연상되지 않는가? 당시가 물리학의 최전성기였다.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자신들만이 세계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했으며, 세계를 움직인다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세계를 뒤바꾸어 놓았다. 세계를 뒤바꾼 가장 상징적인 프로젝트인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하탄 프로젝트'에 젊은 물리학자로 Dutka박사는 직접 참여를 했고, 그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랬듯이 대규모 살상무기, 인류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그런 도구를 학문이라는 미명하에 만들었다는 자책감으로 그도 얼마 안 있어 물리학계를 떠나 숫자로 인간의 마음을 읽고 세계를 파악하는 조사, 통계학자로 변신하게 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연륜의 깊이인지 그는 숫자에 그렇게 매달리지 말라면서 어느 학자의 사례를 들었다. "내 친구 중에 데밍(Deming) 교수라고 있네. 통계를 통한 엄격한 품질관리시스템을 마련한 학자인데, 그가 나중에 내린 결론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 2차대전 후 일본 품질관리의 기초를 다진 학자로 데밍 교수는 일본 경제에 가장 기여한 외국인으로 꼽힌다. 지금도 일본 품질관리대상의 상패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그것을 '데밍상(賞)'이라고 부른다. 70, 80년대 일본 경제가 약진하면서 그 기반을 닦은 인물로 미국에서는 뒤늦게 빛을 발한 인물이다. 그 역시 결국 나중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귀착했다는 것이다.




 데밍을 실례로 한 그의 얘기를 들은 후 조용히 말을 꺼냈다. "데밍 교수의 얘기를 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데밍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들은 학생 중의 하나였습니다." 데밍 교수는 1900년 생인데, 믿기지 않지만 1992년 뉴욕대 경영대학원에서 품질관리에 관한 강의를 했고,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수강생 중의 하나였다. 그가 마지막 강의를 하던 날, NBC TV를 비롯한 방송사와 기자들이 몰려들고 학생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강의장을 나서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93년 조용히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와 데밍 교수의 얘기를 들은 Dutka박사의 얼굴에 반가움의 환한 미소가 번지며, 그가 마지막 강의 때의 정경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그 때의 얘기를 들으며, "그래, 데밍 교수 정말 대단하지", "정말 훌륭한 분이야", "그런 사람과 같이 일했다는 자체로 자랑스러워"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 그의 눈자위에 어느덧 붉은 기운이 돌고 있었다.




 그렇게 데밍 교수에 관한 얘기꽃을 한참 피운 후 자리를 일어서는데 그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재항, 결론은 사람이야. 우리가 데밍 교수 얘기를 하면서 느꼈듯이 사람이네, 사람"하면서 서가에서 본인이 저술한 "DAGMAR; Defining Advertising Goals for Measured Advertising"이란 책을 꺼내 건네주며 환한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그래도 가끔 조사는 필요해!"




 1999년 Dutka박사도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지금은 그의 유산으로 설립된 예술재단인 Joyce Dutka Arts Foundation을 통하여 그의 훈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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