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하다보면 뻔한 사실도 가끔은 삐딱하게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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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연말이면 그 해의 ‘10대 뉴스’와 같은 기사가 신문 한 면 전체를 메우곤 한다. 또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각 부문별로 세분하여 뽑기도 하는데, 스포츠 부문에서 미국은 매체를 불문하고 1위를 휩쓸었고, 국내에서도 공통적으로 10위 이내에 든 그야말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보스톤 레드삭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이었다.

 

        베이브 루드를 헐값에 트레이드한 후의 ‘밤비노의 저주’니, 그 저주를 풀기 위해 피아노를 호수에 빠트리고, 공에 맞아 얼굴을 상한 가여운 소년에게서 저주가 풀리는 실마리가 마련이 되었다니 하는 보스톤 팬들의 극성, 양키 스타디움 관중석 한가운데서 ‘Why not us(우리라고 왜 안돼)?’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던 결연한 표정의 어느 보스톤 팬의 만용에 가까운 행동이야 우리 언론도 한국시리즈보다 더 흥분하여 다루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기적과도 같은 3연패 후의 4연승, 그것도 숙적이라는 말조차 너무나도 젊잖게 들리는 뉴욕 양키즈를 격파하고, 내친 김에 월드 시리즈까지 제패한 보스톤 팬들의 열광은 우리가 화면에서 느끼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광풍이 한 꺼풀 꺾인 직후, 보스톤 토박이 시인이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다음과 같은 타이틀의 내용이 눈에 띄었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허탈감에 빠진 레드 삭스 팬들(With Nothing Left to Win, Fans of Red Sox Suddenly Feel a Loss."




        미국 메이저 리그의 주요 팀들은 자기만의 뚜렷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색깔에 따라 팬들의 성격과 형상이 형성되어 있다. 제품이나 기업으로 얘기하자면 브랜드가 명확하고 그에 따라 브랜드 퍼스낼러티(Personality)가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소위 지하철 시리즈라고 뉴욕 양키즈와 뉴욕 메츠가 월드 시리즈에서 맞섰을 때, 뉴욕 타임즈에서 각 팀의 팬들이 서로 상대를 정의하고 평가하게 하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메츠가 본 양키즈의 팬들은 ‘양키즈 외에는 야구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여피들’이었고, 반대로 양키즈 팬이 본 메츠 팬들은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의 추억을 떨치지 못하고 거기에 젖어 사는 낙오자들’이었다. 서로 적으로서 맞선 상황이라 말에 약간의 날이 서있기도 하지만, 양쪽의 팬들을 구성하는 층들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 보스톤 팬들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단어는 영어로는 정말 표현하기 힘든 바로 ‘한(恨)’이다. 저주를 풀고, 저 얄밉기 그지없는 양키즈를 눌러 버리고 우승 한 번 해보고자 하는 그 한이 최고의 열성 팬들을 거느린 보스톤 레드 삭스를 끌고 온 원동력이자, 80여년이란 세월이 지나며 팀의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한이 풀렸다. 목표를 달성했다. 열광적으로 목표 달성을 축하하며 즐겼다. 그리고 술 깬 다음날 아침 어디로 가야할지 주위를 둘러보니, ‘타도 양키즈’, ‘저주의 사슬 절단’을 소리 높여 함께 외친 옆 자리 팬의 모습이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서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술집에서 죽마고우처럼 어깨동무하고 춤까지 같이 추고 부둥켜 쓰러져 잤다가, 아침에 밝은 햇빛 아래 발견하는 낯선 얼굴과 같은 느낌!

 

        보스톤은 80여년간 구축하였던 자신의 브랜드를 잃어 버렸다. 자신의 목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스토브 리그에서 보이고 있다. 목표가 불분명하니 어떤 선수를 남기고 어떤 선수를 보강할 것인지 기준이 없어졌고, 구단 내의 내분의 소리가 밖에서도 확연히 들린다. 그런 내분에 대해서 그동안 가장 거세기로 유명했던 보스톤의 팬들과 언론이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만 본다. 보스톤 레드삭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 곧 충성도가 현저히 약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장 가까이는 곧 있을 보스톤의 시즌 티켓 판매량이 쓸만한 신호탄이 될 것이다. 어쨌든 2005년 보스톤 레드삭스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다른 각도에서 재미있게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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