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 끝부분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범인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단서를 찾지 못해 놓아줄 수밖에 없는, 진짜 범인일 수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피해자일 수도 있는 인물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영화 중반쯤 박형사의 애인이 수사하느라 도통 집에 못들어오는 두만을 찾아가 강변에서 링거를 놓아주며 하는 대사이기도 하구요.




"밥 먹었니?" "식사하셨어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사말이자 스스럼없는 정겨움의 표시입니다. 먹는 게 아무리 흔해진 세상이라도 집 떠난 자식에게 부모가 묻는 첫마디는 `끼니를 거르지는 않는지`, `밥은 제때 챙겨먹는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일단 밥을 함께 먹고 나면 서먹서먹한 기분이 한결 덜해지고 친근함마저 느끼게 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친해지고 싶거나 뭔가 할 얘기가 있으면 식사 약속부터 잡고 보는 것도 "밥의 힘" 때문이겠지요.




물론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은 아닙니다. 점심 한끼라도 둘이서 자장면을 먹으면 기껏해야 8천원이면 되고, 설렁탕이나 냉면은 1만원에서 1만2천원, 삽겹살에 된장찌개면 2만원 정도 들지요. 하지만 일식집에서 정식을 먹자면 최소 3만원, 1급 호텔 중식당에서 코스요리를 먹자면 15만원은 지불해야 합니다.




저녁이 되면 사정은 또 달라집니다. 자장면 냉면 설렁탕 값이야 저녁에도 같지만 일식집 한정식집 중국집의 이른바 코스요리에 이르면 거의 같은 메뉴도 30%이상 비싸집니다. 점심 정식이 2만5천원인 일식집이면 저녁은 3만5천원, 점심 세트가 1만8천원인 한식당이나 중식당이면 저녁 코스는 최저 3만원은 받는 식이지요.




밥이야 뭘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고, 먹고 싶은 것도 그때그때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제 경우 설렁탕이나 비빔밥 대구탕 짬뽕 모두 좋아하고 라면도 잘 먹지만 아주 가끔은 깔끔한 한정식집에 가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일식이나 중식 코스요리를 먹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한겨울 눈 쌓인 산에서 먹는 컵라면 한그릇은 더없이 꿀맛이지만 바쁜 사람 불러 식사하자고 해놓고선 갈비와 생등심도 있는데 "뭐 드실래요? 맛있는 걸로 드세요" 해놓곤 먼저 "나는 갈비탕" 하는 사람을 좇아 도리 없이 시킨 갈비탕이 맛있기는 어렵겠지요. 거꾸로 작은 일 하나 해결해주곤 "밥 한번 사시지요"하는 바람에 마련한 자리에서 턱없이 비싼 메뉴를 주문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식사 또한 즐겁기는 힘들 겁니다.




때 아닌 `밥` 얘기는 요즘 세간의 화제가 `밥값`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청렴행동 강령에 "1인당 3만원이상 하는 밥을 먹지 말 것"이 포함되면서 여럿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면 으레 "1인당 3만원 안넘나" 하는 말이 농반진반으로 오가는 형편입니다.




공무원도 아닌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그만큼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걸 의미하는 걸 테지요. 실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나 과천 정부 청사 부근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은 파리를 날리고 때문에 상당수 식당에서 "밥값"을 조절중이라고도 합니다. 덕분에 갈비집보다 삼겹살집이 호황을 누린다고도 하구요.




사실 별로 특별한 것도 없으면서 1인당 5만-6만원씩 하는 한정식이나 생선회를 먹는 건 아깝고 낭비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호텔 음식도 마찬가지지요. 돈이 많은 사람이 자기돈 내고 먹는 거야 무슨 문제겠습니까만 회사돈 나라돈을 쓰면서 굳이 비싼 음식을 먹어야하는 걸까에 이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공무원 청렴강령 시행 뒤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이 한가해지고(정말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 3만원 미만짜리 메뉴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는 건 "잘됐다" 싶기도 합니다. "음식값 거품도 좀 빠져야지" 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니까요.




사실 저녁 모임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1인당 1만원에서 많아야 2만원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어지간한 자리면 1인분에 7천원 안팎인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고 칼국수나 된장찌개로 마무리하면 딱 좋지 않을까 여기는 거지요.




때로는 탕수육 대신 전가복이나 칠리새우같은 요리를 먹고, 삼겹살 대신 갈비를 먹을 수도 있겠지만 "접대"란 으레 먹을 게 있건 없건 1인당 최소 몇만원이상씩 하는 집에서 해야 한다는 풍조는 달라져도 상관없겠다 싶은 겁니다. 마음 한쪽에 "제 돈이면 그렇게 비싼 걸 먹겠어. 공금이니 그렇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문제는 일선 공무원에겐 한끼에 3만원이상 짜리는 먹지 말라고 해놓곤 3당 대표라는 사람들은 고급 룸살롱에서 여종업원을 끼고 하루저녁에 7백만원어치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결국 벌써부터 네 사람이 3만원짜리를 먹은 다음 여섯 사람이 먹은 걸로 하거나, 전같으면 4가지 요리에 3만원 받을 걸 2가지에 2만원 받는 식으로 음식값을 올리는 일까지 생겨났다는 소식입니다. 실천할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밀어부쳤을 때의 부작용만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준다고나 할른지요.




중요한 건 누구와 어떤 `밥`을 먹느냐가 아니라 `밥` 때문에 생겨나는 `부적절한 거래`를 막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건 한끼 밥값 술값을 제한하는 등의 `촌스러운` 방법으로 가능해지는 게 아닐 테구요.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밥 한번, 술 한잔에 안해줄 일을 해주고 해줄 일을 안해주겠습니까.




수천만-수억원을 받아도 대가성만 입증되지 않으면 멀쩡하게 떵떵거리고 잘살 수 있는 현실은 그대로 둔채 밥값을 얼마로 해야 한다는 식의 규제는 정말이지 눈가리고 아웅하거나 또다른 부조리를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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