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사고방식이 다르고 따라서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말이 안통하는` 게 어디 남녀뿐인가요. 50대와 30대, 40대와 20대는 물론 심지어 20대와 10대조차 생각이 다르고 그러다보니 상대방의 사고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힘들어 합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건 사물에 대한 인식의 틀이 다르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같은 사실을 놓고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각도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세대차야 태초부터 계속돼온 것이지만 근래 우리 사회의 세대간 괴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심각해 보입니다. 북핵을 비롯한 정치 사회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대중문화에 대한 감각 또한 너무 동떨어집니다.




가요만 해도 나이든 세대는 노래인지 중얼거림인지 알수 없는데다 가사는 야하기 짝이 없는 랩송이나 댄스뮤직을 도저히 듣고 있을 수 없고, 젊은층은 젊은층대로 느려 빠진데다 유치한(?) 옛가요가 우습기만 한 듯합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대한 반응 또한 세대별 의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지요.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KBS2TV 일요일밤 8시50분)는 2003년초 우리 사회 대중문화 코드의 일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대가 다르면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달리 받아들이는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개콘을 보며 시종일관 깔깔 대는 사람과 "저게 뭐야" 하며 쓴 웃음을 짓는 사람,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 공존하니까요.




청소년 층에선 "우와아" "나가 있어" "천한 것들" 등이 대유행이지만 20대 후반만 돼도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하는 표정을 짓고, 어른들은 아예 "그게 무슨 소린지" 알 길이 막연해 어리둥절하고 생뚱한 얼굴을 합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내 아를 낳아도"가 새로운 유행어인 걸 아는 어른도 그게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는 겁니다.




`개콘`은 우비 삼남매, 생활사투리, 도레미트리오, 봉숭아학당 등 다양한 코너로 구성된 1시간짜리 종합 개그쇼 프로그램입니다. 10대들에게 가장 인기있다는 `우비 삼남매`의 특징은 만화캐릭터같은 차림의 등장인물들이 나와 텔레토비같은 단순동작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노란 비옷을 입은 우비소녀가 종종걸음을 치며 “기달료봐아, 나 이뽀? 우와아!”하는 식입니다.어른들이 보기엔 "뭐가 뭔지" 의아하기 짝이 없지만 중고생들은 배꼽을 부여잡지요.




세대별 문화코드가 어긋나는 건 `우격다짐` 코너도 마찬가지입니다. 흰색 코트를 입은 개그맨이 장갑을 낀 손으로 허공을 찌르며 빠른 말투로 내뱉지요. "내 개그는 닭꼬치야. 왜? 꽂히잖아. 내 개그는 태양이야. 눈뜨고 볼 수 없지. 내 개그는 유모차야. 왜? 애만 태우지. 어때, 웃기지, 웃기잖아. 내 개그는 여기까지야.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어른들 눈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우격다짐이고 따라서 썰렁하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들은 수시로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며 기다립니다.




`봉숭아학당`의 귀족학생 세바스찬이 쓰는 “어휴∼ 천박해. 넌 나가 있어.”"천한 것들" "불태워 버려"도 나이든 층엔 어이없지만 청소년들은 2003년 최대 유행어로 만들어 즐깁니다. "선생님, 제가 거기로 가겠어요, 세븐에잇나인텐. 호호호”하며 다리를 벌렸다 오무렸다 하는 `ㅅ자 춤`을 추는 `댄서 김`의 인기도 기성세대 사고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기성세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노대통령을 흉내낸 “맞습니다. 맞고요”로 뜬 노통장의 대사나 일상용어를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보는 `생활사투리` 의 표현, 전개방식은 생경해도 화음은 열심히 연습하는 흔적이 역력한 도레미트리오의 노래 정도지요.




`개콘`에 대한 느낌으로 대표되는 세대간 인식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무엇이 한쪽은 `열광`, 다른 한쪽은 시큰둥 정도가 아닌 `이해불능`으로 갈라놓는 것일른지요. 일부에선 이같은 격차가 사물을 이해하는 문화코드의 변이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기성세대에게 있어 개그는 `말로 이뤄지는 것`이고 따라서 일단 `말이 돼야` 하는 반면, 아이들에게 개그는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사물인식의 기본틀이 `말이냐 이미지냐`에 따라 같은 내용이 우습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하다는 겁니다. `우비 삼남매`의 노란 비옷과 커다란 안경,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가 어디서 유래된 건지 아는 청소년층에겐 그 이미지 자체로 충분히 다양한 연상작용과 함께 웃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생전 처음 보는 어른들에겐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우격다짐`과 `세바스찬` `댄서 김`의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해석은 구구합니다. 우격다짐은 "내 개그는/ 태양이야/ 눈 뜨고/ 볼 수 없지"식의 4ㆍ4조 또는 3ㆍ4조 운율로 이뤄져 랩같은 느낌을 주는 게 잘 먹히는 요인이고, 세바스찬의 "나가 있어"와 "천한 것들" "불태워 버려"는 억압된 감정 분출을 대신하는 요소로 각광받고, `댄서 김`은 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몸동작 자체로 어필한다고 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대거나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는 어른들과 달리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를 즉석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여기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아이들의 생태적 특성 또한 개콘 열기의 한 요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말보다 이미지, 감춤보다 드러냄, 리듬에 대한 자연스런 반사작용 등 어른과는 확연히 다른 아이들의 문화코드가 어떻게 보면 `단순 반복적이고 어설프고 억지스럽고 황당한` 개콘을 시청률 2-3위를 다투는 인기프로그램 대열에 올려놨다는 얘기지요.




대중문화 그 가운데서도 공중파TV 프로그램엔 최면제 또는 마약같은 힘이 있습니다. 자꾸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들고 그 결과 거기에 내재된 어법이나 논리,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게 그것이지요. 개콘의 인기는 엄연히 현존하는 실체이고, 이는 누가 뭐래도 개콘이 어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청소년층의 문화코드를 읽어냈다는 얘기가 됩니다. 취향에 관계없이 주목해봐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그러나 만에 하나, TV가 아이들의 사물과 세상 읽는 틀을 그처럼 단순하고 비논리적이고 어설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건 기우일까요. 사물에 대한 의구심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를 키우는 것도 청소년시절의 중요한 훈련중 하나인데 무조건 "우와" "맞습니다 맞고요"를 강조하고, 마음에 안들면 "나가 있어" "불태워 버려"라고 내뱉는 건 걱정스럽습니다.




`생활사투리` 코너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혀 달리 표현하는 영ㆍ호남의 어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무 것도 모르는 세대에게까지 지역간 차이를 강조하는 것같아 그저 우습지만은 않습니다. `결혼합시다`를 `내아를 낳아도` 식으로 말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것도 가뜩이나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마초적 현상의 일단을 보는 듯해 씁쓸하구요.




오락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보는 눈이 형성되는 시긴의 아이들이 볼 수 있고 보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른들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단순 오락프로라고 무심코 봐 넘기는 동안 아이들은 개콘 속 어법이나 비논리적 사고에 그대로 젖어버릴 수도 있다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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