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시가 다 되었는데도 아직 창밖은 하얗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백야이던가. 한여름의 헬싱키는 하얀 밤 속에 하얀 꿈을 꾸는 도시가 된다. 하얀 피부를 가진 큼직큼직한 사람들이 하얀색의 커다란 친절을 보여주는 이 도시를 걷고 있노라면 공해에 찌들어서 잠시나마 혼탁해졌던 나의 영혼은 하얗게 치유된다. 꼭 봐야하는 헬싱키 대성당을 찾기 위해 난 그저 길 가던 할머니에게 방향을 물었을 뿐인데, 내가 눈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를 지켜보며 손을 흔들던 그 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먼 동방에서 온 손님이 행여나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다른 곳으로 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나 하는 것처럼. 친절함 마저 하얀색으로 나의 머릿속을 채운다.

헬싱키 대성당에 도착한 나는 놀라도 하얗게 놀랐다. 이렇게 크고 웅장한 하얀 색의 성당을 다른 도시에서는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녹색 모자를 쓴 백악관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은 이 건물이 핀란드 루터교의 총 본산이라고 한다. 하얀 도시 헬싱키를 더 헬싱키답게 만드는 이 성당을 오르는 계단에 앉아 북구의 여름을 한 없이 즐기며 맥주를 마셨다.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White Night' 이라는 영화가 실제 백야 상황에서 생각나니 ‘라핀 쿨타’ 라는 물 좋은 핀란드 맥주가 더 맛있었다.

(핀란드 루터교의 총 본산인 헬싱키 대성당)



사실 핀란드는 동방에서 온 핀족(Finns)이 세운 나라다. 헝가리의 마자르족도 동방에서 온 민족이지만 핀족 역시 우랄알타이어계에 속하는 동방민족이다. 아직도 핀란드 북부로 가면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가진 종족이 산다고 하니 왠지 모를 소속감마저 든다. 그러나 스웨덴에게 600년 이상 통치를 받았고, 100년 동안이나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검은 눈은 파란 눈으로 변했다고 하니 슬픈 마음도 솔솔 일어난다.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참담한 마음이 시대를 달리하는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는 우울하고 답답한 고국의 상황을 ‘핀란디아’ 교향시에 담았다. 이제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소강국이 된 핀란드를 시벨리우스가 환생하여 본다면 환희에 찬 핀란디아 2부를 작곡하지 않을까.

헬싱키 앞바다에서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 수오멘린나(Suomenlinna) 요새를 걸었다. 요새 곳곳에 숨어있는 항쟁의 역사보다는 고즈넉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핀란드인들은 역사를 거치면서 스스로도 하얗게 변했지만 아픈 역사조차 하얀 물감으로 색칠해버린 것 같았다. 하얗게 색칠된 역사는 더 이상 아파 보이지 않았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수오미(Suomi)라 부른다. 수오미는 ‘호수의 나라’ 라는 뜻인데 핀란드 전역에 19만개에 달라는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고 한다. 이 호수는 핀란드 사람들의 영혼이다. 순결한 물의 요정이 만든 수오미를 그들은 사랑한다. 헬싱키를 이루는 하얀 유무형의 모든 존재에 나는 감사를 표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나의 힐링은 이미 헬싱키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얀색으로 머릿속을 칠하고 싶은 사람에게 헬싱키 여행을 권한다. 그리고 긴 봉사활동을 떠나려는 사람에게도 권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 아픔을 기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긍정의 에너지,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혁신의 이미지, 파란색 속에 숨어 있는 동방의 신비. 헬싱키는 이 모든 것을 가진 하얀 꽃이다. 백야 속에서는 오히려 잘 안 보일 수 있는 하얀 꽃은 모습보다는 향기로서 그 존재를 나타낸다.

하얀색, 힐링, 헬싱키의 두음이 모두 히읗인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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