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그저 남미에 있는 작은 나라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남미의 맹주인 삼바의 나라 브라질,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그 인지도 면에서 많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지도를 펼쳐 보기 전에는 베네수엘라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 잘 상상이 안 간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대륙에 위치해있지만 남미국가라기 보다는 카리브해 연안국가라고 규정해야 더 어울릴 듯 싶다. 8년 전, 베네수엘라 출장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서야 비로소 난 남미 지도를 꺼내봤었다. 왼쪽으로 콜롬비아가 있고, 오른 쪽으로는 가이아나라는 더 생소한 나라가 있으며 아래 쪽으로 아마존 정글로 연결되는 브라질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베네수엘라는'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인데, 베네수엘라를 처음 발견한 스페인 정복자가 원주민의 수상가옥을 보고 이태리의 베네치아 같다고 느껴서 명명한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에는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많이 있다.

 

카리브해 연안국가라는 지리적 이유때문에, 북미 대륙, 아니, 전세계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미국과 많은 교류를 해왔고, 미국의 영향을 다분히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야구가 베네수엘라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국민 스포츠라는 것이다. 남미 국가가 대부분 그렇듯이, 축구를 잘하고 축구에 열광하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출신의 요한 산타나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70승 이상을 올린 알아주는 명투수이다. 베네수엘라에 가서 현지의 야구 열기를 몸소 느끼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상식 밖의 세계사' 였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는 유일하게 OPEC(석유 수출국 기구)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 매장량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현재로서 세계 8위의 생산국이지만 미개발 유전지대까지 합치면 사우디 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라고 주장하는 지질 전문가들도 있다고 한다. 내가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던 1999년만해도 휘발유 1리터당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정도여서, 편의점에서 사먹던 콜라나 물값보다 저렴했던 가격에 놀라고 한 없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산유국으로서 많은 돈을 벌어 모든 국민이 잘 살 것 같은 베네수엘라이지만, 빈부격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도심지의 빌딩을 몇 개씩 소유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변두리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 간다. 전 국민의 사분의 일 이상이 석유산업에서 피땀 흘려 일하고 있지만,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이 국가의 모든 부를 소유하고 있는 부조리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19세기 초반에 독립국가가 된 이후에도 많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런 빈부격차와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분상승의 길이 있으니 그것은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여성과 그 가족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 입문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갖게 된다. 실제로 이레네 사에스(Irene Saez)라는 여성은 미스 유니버스에 뽑히고 나서 시장을 거쳐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바도 있다. 미인으로 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면 베네수엘라 부모들은 딸들을 어려서부터 미인학교에 입학시켜 혹독한 훈련과 학습을 강요하기도 한다. 심지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인체의 모든 부위를 성형 수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전국민적인 열기에 힘입어 베네수엘라는 각종 세계 미인대회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조금의 가능성만 보여도, 신분상승을 위해 성형 수술을 서슴치 않고, 미인학교에 입학해서 인공적인 미인으로 가공되어지는 베네수엘라 여성의 현실이 나의 관점으로는 참 슬펐다. 인간이 가진 재능은 그 분야가 지극히 다양하고,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인자의 차이에 기인한 외모적 다양성도 무궁할진대, 오직 외모를 좋게 가꿔야만 부와 명예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글펐다. 적어도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터 놓은 유일한 ‘신분상승 사다리’라는 것이 미인대회입상이라는 제도 아닌 제도의 굴레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실력이 통하지 않고 외모가 전부인 외모지상주의를 보는 것 같아 참담하기까지 했다. 물론 미인대회가 베네수엘라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미인대회 입상을 동경하고 그에 탐닉하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언제나 좋은 것을 보고 경험하지는 않는다. 아주 불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다. 분노에 떨기도 하고,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관용의 정신과 문화적 상대주의를 배운다. 당신이 글로벌 인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할 때, 단순히 연민과 감상에 빠지기 보다는 그것을 포용하고, 나아가 개혁할 수 있는 창조적 마인드를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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