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효나 님. 친구들과 함께 차린 아침상>

오랫만에 고국을 찾은 S와 그녀의 딸 효나 그리고 Y와 저 이렇게 넷이서 퇴촌 친구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반가울 리 없는 게 여름손님 치루는 일인지라 사전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라' '먹을 것은 모두 우리가 해결할테니 재워만 주라'며 통보에 가까운 전화 한 통화로 1박2일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오전 근무를 언제 마쳤을까 싶게 Y는 오리며 삼겹살 생선과 과일을 살뜰하게 챙겨놓고 번개 집결지인 학동역 1번 출구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팔당대교를 건너 남한강변의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 달리다 보니 서울은 금세 아득해집니다.
아예 떠나는 건 아니지만 늘 이렇게 탈서울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꿈꾸는 귀촌도 실현되는 것이겠지요. 길눈 밝고 운전 잘 하는 기사(Y)있겠다 옆자리에 아리따운 효나와 마음 편한 S까지 함께 하니 여행은 요렇게 하는 것이다 싶습니다.

퇴촌집에 도착하니 해는 어느덧 서산에 걸려 있어 우리는 바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주인장이 부재 중이시라 우리가 손수 장작도 패고 화덕에 불도 지펴서 정원에서의 바비큐 파티를 제대로 벌였지요. 와인에 숙성시킨 오리고기며 삼겹살이그득했었는데 어느새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 버리네요. 참나무 장작 불에 구워서인지는 몰라도 느끼해보이던 고기가 어찌나 부드럽고 맛이 좋던지 육식을 별로 즐기지 않던 저도 실컷 먹었답니다.

산 속이라 서산에 걸려 있던 해는 금세 넘어가버리고 사위가 어두워지니 하늘에는 맑은 별들이 총총히 빛납니다. 티타임을 위해 다탁을 마련하는데 효나가 손수 만들어 왔다는 예쁜 초를 들고나와 수반에 띄우고 불을 붙이니 한여름밤의 분위기는 가히 예술입니다.
'오메, 멋져부네!'
모두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리는 그만 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이 깜빡 들었다 싶을 때 주인장이 들어오시는 기척이 나더군요. 

주인장께선 늦은 밤 퇴근길인데도 아내 친구들의 추억만들기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싶게, 그 시간에 어디서 노래방 기기를 구해오셨더군요. 자다가 떡 얻어 먹는다더니......
창졸간에 산중의 안방에 앉아 노래방 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거지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졸음은 싹 달아나버리고 정신은 초롱초롱해집니다. 저희들은 다시 팔팔해져 느닷없이 야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산속 마을이라 누가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이도 없고 방음도 잘 되어 있어서 짧은 가창력에 주눅 들 일도 없이 가요, 가곡, 동요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목을 혹사 시켰지요. 레퍼토리가 거의 바닥나고 체력도 소진되어 자리에 든 게 2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시간도 오나보다 싶을 만큼 정겹고 행복했지요.
 
자리 바뀜도 의식할 겨를 없이 단잠에 빠져 있는데 날은 훤히 밝았고,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가 산 속 아침의 적막을 깹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거실로 나가니 다른 친구들도 벌써 일어나 산책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며 현관 앞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먹털이(강아지)는 저만치 달아나 버렸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사료로만 연명하다가 산야를 맘껏 누비며 본성대로 살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내 세상이다 싶은 거겠지요.
먹털이는 벌써 산의 초입까지 튀어올라가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줌니들은 왜 그리  느려터졌느냐고 타박이나 하는 것처럼 이쪽을 보며 설레발이를 칩니다.

청량한 전원의 아침 정기를 흠뻑 들이키며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아줌마의 기질은 곧바로 발동 됩니다. 약속이나 한 듯 친구들은 멀대처럼 웃자라버린 산쑥의 연한 부분만을 톡톡 끊어서 부지런히  봉지에 담습니다. 지난 봄에 왔을 땐 겨우 보일락말락 움만 틔우고 있던 쑥이 30-40 센티는 족히 넘을 정도로 키가 커버렸네요.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은 울울창창 우거져 있어 앞서 가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고요. 곧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 동남아 쪽으로 날아가버릴 뻐꾸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가슴을 적십니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아침 해가 화끈 달아 오릅니다. 간밤 늦은 시간까지 실컷 웃고 떠들어서인지 시장기도 들고요. 일행은 산을 내려와 함께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마당 한켠의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 오이, 가지, 풋고추를 따오고 꽁치와 삼치에 소금을 뿌려 참나무숯불에 구웠습니다. 불기운이 너무 세서 삼치는 겉이 조금 타버렸지만 참나무향이 배어 있어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강낭콩을 넣어 밥을 짓고 두부와 양파로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주인 마나님이  미리 준비해놓은 머위에 들깨가루를 넣어 나물을 볶았습니다. 강화순무로 담근 물김치도 차리고 건강에 좋다는 가지나물도 장만했습니다. 영양부추와 양파채로 겉절이도 버무렸지요.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마음이 통해버리는 친구들과 함께 정성을 들여 차린 아침상이 거룩했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비로소 제자리에 들어서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숨 쉬는 일, 마시는 일, 먹는 일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군요. 이곳에서 섭취한 그 모든 것들은 우리를 지탱하는 데에 이로움을 주리라는 예감으로 가득합니다. 식사를 마치니 음식(만드는 일과 먹는 일)은 곧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생명들 간의 소통이며  나를 위한 수행이라는  평소의 생각이 더 또렷해집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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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은 지난 여름의 일이지만 위에 게재된 이미지 파일을 이제사 찾게 되어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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