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담양군 대덕면의 들에서 마을 어른들이 못밥을 드시는 모습>

'이 농사 지어 무엇하리, 나라 봉양 하여보세
그러고 남은 놈 무엇 허리, 선영봉친 하여보세...'

나주의 다시면에 전해 내려오는 들노래(농요)의 대목에는 선인들의 농사에 대한 올곧은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식량은 인간생존의 필수조건이기에 경제적인 득실에 우선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또한 식량생산은 농촌의 가계를 감당하는 주수입원이니 농가의 주업이요 생명줄이기도 합니다. 하기에 일년의 첫농사가 시작 되는 모내기는 명절 못지 않을만큼 중요하게 치루는 행사였습니다. 모를 심는 날, 바쁜 농부들을 위해 들로 내다 먹는 밥이 못밥입니다. 

모심기가 늦어지면 소출에 당장 영향을 미치니 품앗이가 어려운 형편에 있는 농가에서는 일꾼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지요.귀한 농번기의 일꾼들을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 함은 어머님들의 당연한 몫이기도 하였고요.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벼농사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으니 참으로 고된 중노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즈음이 바로 모내기 철,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쪄서 다발로 묶어 지게로 져나르고 무논에 못줄을 잡고 허리를 구부려 종일토록 모심기를 하였습니다. 뼛골이 빠지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여야 하는 농부들에게 일 할 의욕과 에너지를 공급하여 주는 단비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農謠요 못밥이었습니다.

예전의 노동시스템은 거의가 품앗이나 두레의 형태였지요. 논주인의 부인이 남편과 일꾼들을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하여 광주리나 함지박에 이고 나가 마을의 당산나무 밑이나 널찍한 논둑에 모여 앉아 풍년을 기원하며 먹고 마시는 자리가 못밥이었습니다. 같은 두레의 팀원들은 돌아가며 자기의 논에 모내기를 신속하게 마쳐야 하는 터라 협력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내 일이 네 일이고 네 일이 곧 내 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대단했었지요. 예를 들면 유사인 안주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일꾼들이 저마다 한두 가지씩 준비해온 음식으로 못밥을 차리기도 하였으니까요.

남도지방에선 모내기가 끝나고 귀가하는 일꾼들에게 고봉으로 담은 밥 한 주발과  굴비 한 마리씩을 들려서 보내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내기도 거반 기계화 되었으니 못밥을 먹을 일도 못밥을 장만하는 일도 사라져버린 풍속이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못밥의 상차림은 지역이나 마을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일꾼들에게 맛나고 영양가 있는 밥상을 준비하려는 안주인의 마음가짐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명 밥태기나무로도 불리는 이팝나무에 핀 소담스런 꽃을 보니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비축해 두었던 쌀이며 귀한 식재료들을 아끼지 않고 차려내신 못밥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걸 어찌하지 못하겠습니다.

보리베기가 끝나고 마을 뒷산 소나무 숲에서 뻐꾸기가 울어대는 이맘때쯤이면, 들녘은 온통 모심는 농부님들이 부르는 육자배기로 가득했습니다. 그토록 힘든 농삿일을 구성진 노랫가락과 농주 한사발로 달래가며 하루의 일과를 살뜰히 마치시던 어른들의 끈기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그게 가족을 위한 길이요, 이웃을 위한 길이요, 세상을 위한 길이라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내기철이 지나면 다시 일꾼들과 어울려 한 상 차려 먹는 풍습도 있었다고 강릉 향토음식점  '서지초가뜰'의 창녕조씨 종부는 얘기합니다. 이것을 질상이라 하는데 모내기를 도울 때 꾸려진 한 무리의 일꾼을 한 질이라고 부른 데서 생겨난 말이라 합니다. 질상은 못밥보다 한 단계 높인 상차림이라 하는군요. 질상에는 못밥보다 좀 더 고급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상을 차리고 모판에 뿌리고 남은 볍씨를 찧어 만든 씨종지떡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씨종지떡은 쑥, 호박, 대추, 밤 등을 넣어 찌는 떡으로서 맛과 영양 모두 빼어난 강릉의 향토음식이라고 하네요.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못밥을 재현해 봅니다.
불린 찹쌀에 삶은 팥을 넣어 찰밥을 지었습니다.
찬거리로는 소고기미역국, 밥새우무침, 깻잎멸치조림, 오이지무침, 풋갈치감자조림, 열무얼갈이김치, 마늘종장아찌, 부추전, 콩나물무침, 머위들깨탕, 쑥갓나물, 돼지고기양파볶음에 막걸리를 준비 하였습니다. 일에 여념이 없어 거머리에 물린 줄도 모르고 뙤약볕 아래서 진종일 모를 심으시던 그때 마을의 어른들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음식은 소통이요 이야기요 그리움이다는 생각이 잔잔하게 밀려 옵니다. 유년에 먹어 본 못밥이 나를 즐거운 시간여행 속으로 데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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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담양군청의 홍보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제게 메일로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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