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실개천 사이에 보송보송한 솜털을 달고 움튼 버들개지, 얼음장 밑으로 돌돌 흐르는 계곡물, 남쪽 바닷가 들녘에 핀 유채꽃... 아무래도 좋습니다. 기다리던 봄은 바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현상은 참 신비롭기도 하지요. 봄볕이 내리 쬔지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수선화며 튜울립 같은 구근류의 화초들은 벌써 파아란 새순을 뽐내며 자라고 있네요. 뜨락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머지않아 산과 들에는 쑥이며 쑥부쟁이 원추리 취나물들이 쑥쑥 자라나 우리네 밥상을 푸르고 향긋한 봄기운으로 채워주겠지요.

아슴한 옛날(1960년 봄,) 대보름을 쇠고 달포 정도 지나면 언덕배기나 논둑엔 쑥부쟁이나 쑥 자운영 같은 봄나물들이 앙증맞게 돋아나 있었지요.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 몰래 바구니와 따개칼을 챙겨들고 가능한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봄나물을 캐러 가곤 했습니다. 당시엔 한센씨병 환자들이 마을을 떠돌다 자신의 병을 낫게 하려고 여자 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섬뜩한 괴소문이 떠돌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오소소 떨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매우 악의적인 헛소문일 뿐이었지요.( 성인이 된 다음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그런 악소문에 휘말려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스러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당시의 어머님들은 어린 딸 아이들을 단속하시느라 늘상 마음을 졸이고 계셨습니다.

제 또래의 친구들은 그런 헛소문에 주눅이 들 정도의 겁쟁이들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많으신 어른들의 당부를 잔소리만으로 흘려 듣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와 마을을 오가는 등하교 길은 혼자 다니는 일이 없이 항상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녔지요. 부락의 언니 오빠들과 동행하라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분부대로 집안에 들어 앉아 숙제나 하며 말썽없이 지내기엔 봄볕이 너무 환했고 새들의 지저귐이 꿈처럼 감미로웠습니다. 학교에서 이미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감쪽같이 모여 불현듯 호출을 당하지 않을 만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봄마실을 갔지요.

예전에는 벼 수확을 끝낸 논바닥엔 다음 해의 농사에 거름이 되라고 자운영씨를 뿌려 두었는데 그 씨앗들이 움을 틔워 이듬 해 봄이 되면 아주 파릇파릇한 풀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농부님들은 애써 심어 놓으신 거름용 자운영이 오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였지요. 그러나  저희는 그 초록이 벌이는 향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나물도 나물이지만 거짓말처럼 예쁘게 돋아난 새생명들과 함께 놀아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기어코 자운영 밭에 들어가 보려는 아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농부님과의 실랑이는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에서 주인장과 장난기 어린 악동들과의 한 판 줄다리기는 매번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주인이 먼 데서 소리를 지르며 나타나자마자 저희 일행은 걸음아 날 살려라며 줄행랑을 치곤 했으니까요. 가쁜 숨을 내쉬며 달아나면서도 '뭘 이 쬐끔을 가지고 저렇게도 역정을 내실까' 싶었습니다. 말 보다 욕을 먼저 배우더라고 논두렁에서 쉽게 캘 수 있는 나물 보다는 들어가지 말라는 자운영 밭에 들어가 나물 서리를 하는 몹쓸짓이 그때엔 왜 그렇게도 재미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무들과 어울려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화들짝 나며 어머니의 걱정하시는 얼굴이 어른거리고 아버지의 무서운 나무라심이 떠올랐습니다. 걱정을 한 건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도 하나 같이 풀이 죽어 나물을 캐던 칼을 똑바로 펴서 땅 바닥에 떨어뜨리며 점을 쳐보는 것이었습니다. 칼이 땅에 꽂히면 무사히 넘어갈 거고 칼이 주저앉아버리면 꾸지람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자는 것이었지요. 그 터무니 없는 우연을 믿어서라기 보단 그런 식으로라도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캐온 나물 바구니엔 자운영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쑥과 쑥부쟁이로 가득했습니다. 바구니에 담겨진 나물들은 다음 날 저녁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서 맛깔난 반찬으로 변신하였습니다. 여린 쑥을 돌확에다 자근자근 찧어 쓴물을 빼고 된장을 풀어 끓인 쑥국이며 약간 쌉싸름한 맛이 돌면서도 상큼한 향내가 나는 쑥부쟁이 나물에 밥을 비비면 왜 그렇게 맛나던지요. 데친 주꾸미와 시금치를 함께 넣고 달콤새콤하게 무쳐 접시 그득 내오시던 그  봄날 저녁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도 청청하고 엽렵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저작이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셨으니 세월의 無常함에 가슴이 아립니다.

산수유 매화 영춘화 개나리가 차례로 피어나고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도 기지개를 켜며 활기를 되찾는 봄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은 자연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희망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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