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이 다가오네요. 설날이 실내에서 치루는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부락 단위로 마을사람들이 모여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놀이들을 옥외에서 펼치는 명절입니다. 대보름은 독자적인 명절이라기보다 설의 연장선상에 놓인 명절이지요.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서부터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함께 모여 대보름에 치룰 행사를 위한 채비를 하고, 마을끼리 겨루어 볼 놀이의 예행연습으로 날짜를 보냈으니까요. 1년 간의 명절을 통틀어서 세시행사가 가장 많은 명절이 대보름이었습니다. 대보름놀이의 형태는 지방마다 달랐지만 본격적인 농사철을 대비해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고 한 해의 액을 막으려는 뜻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깥에서 지내는 행사가 많다 보니 준비하는 음식도 설날에 비해 훨씬 간소한 편이었지요.
대보름을 대표하는 음식은 부럼과 오곡밥에 귀밝이술과 묵은나물(陳菜)입니다. 호박오가리, 가지고지, 시래기, 취,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줄기, 피마자잎, 도라지 등 말린 나물을 삶아 우려내고  갖은 양념에 볶아서 만든 아홉 가지 나물과 오곡밥은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오곡밥 대신에 팥을 넣고 찐 찰밥이나 약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지요.

보름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형제들과 즐기던 더위팔기나 아침상에서 맛 보았던 따끈한 귀밝이술 한 모금과 어슷어슷 낸 칼집 위에 양념장이 발라진 참조기구이는 지금도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해 낼 만큼 각별했습니다. 오곡밥이나 찰밥 위에 나물 몇 가지를 얹고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에 싸서 만든 음식을 복쌈이라 합니다. 복쌈은 맛도 좋거니와 만들기도 간편해서 나들이음식으로도 아주 그만입니다.

조상님들은 보름날 복쌈을 만들어 그릇에 볏단을 쌓듯 수북히 담아 성주신께 올린 다음 먹으면 복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복쌈에 맛과 영양을 더하기 위해 고기산적이나 조리된 생선을 한점 더 얹기도 하였습니다.

갖가지 야채와 해물 고기를 채 썰어서 볶고 구절판에 돌려 담아 얇게 부친 밀전병으로 싸서 먹는 밀쌈도 선인들이 즐겨 드시던 음식입니다. 유난스레 쌈을 즐기던 전통의 식문화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계승 발전되어 왔습니다. 최근 거세게 일고 있는 웰빙식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식메뉴가 쌈밥이기도 하고 기내식의 식단에도 올라 내외국인들의 찬사를 톡톡히 받은 바 있습니다. 일반가정의 밥상에서도 쌈채소 몇 줌만 있으면 다른 찬거리 걱정 없이 한끼를 거뜬히 해결할 수 있지요. 

쌈밥의 소재와 조리법은 다양합니다. 쌈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상추쌈입니다. 간단하게 밥과 쌈장과 상추만으로 쌈을 싸서 먹기도 하지만 불고기나 고기완자와 북어보푸라기를 곁들여 정성스레 마련한 상추쌈차림도 있습니다.

쌈을 싸는 채소의 종류도 갖가지여서 봄동, 양배추, 곰취, 깻잎, 호박잎, 쑥갓, 당귀잎, 열무잎, 배추, 머위잎, 연잎 등 잎이 너른 채소는 모두 쌈의 재료가 될 수 있고 미역이나 다시마 곰피 김 같은 해조류도 좋은 쌈거리에 듭니다. 최근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쌈채로 크게 성공을 거둔 귀농인의 사례를 보아도 쌈을 즐기는 미식가들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쌈밥차림에 들어가는 육류나 해물 등 부재료도 여러 가지입니다. 봄철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생멸치로 조리하는 멸치쌈밥도 그 중의 하나이지요.갓 잡아올린 싱싱한 멸치를 맛술에 담가 비린내를 제거하고 무청시래기나 말린 고구마줄기 삶은 것을 냄비 바닥에 깔고 청양고추와 마늘을 넉넉하게 넣고 매콤하게 지져낸 생멸치조림을 밥 위에 얹고 상추잎에 싸서 먹는 남해안의 별미음식입니다.

쌈밥에 맛을 더하는 쌈장의 종류도 많습니다. 간장 된장 청국장 고추장 막장 집장 같은 장류에 양념을 하여 조리하기도 하고 각종 젓갈에 양념을 하여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양념한 꽃멸치젓을 잘게 다져 만든 쌈장은 감칠맛에서 빠지지 않아 걸죽한 맛을  좋아하는 남도 사람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기운이 서서이 피어오르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푼해지겠지요. 봄의 상징성은 新生이자 蘇生입니다. 언 땅 속에서 새순을 틔우기 위해 기나긴 겨울을 기다리고 준비한 생명들이 다투어 되살아나는 봄이 오고 있습니다. 자신도 봄처럼 새로이 태어나려면 버려야 할 누습이 무엇인지를 성찰해보시고 아름답게 소생하는 봄날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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