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는 벌써 매화가 피고 고로쇠수액의 채취도 시작되었다하는데 중부지방은 동장군의 기세가 좀체 꺾이질 않네요. 입춘이 지난지가 열흘이 넘었으니 한낮엔 양광을 기대해 볼만도 하건만 허공엔 아직 싸늘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우수를 하루 앞두고  많은 양의 눈까지 내렸으니 가까이 온 듯하던 봄은 다시 멀어져버렸습니다. 워낙 혹독했던 겨울인지라 물러나는 일 또한 수월하지가 않나봅니다.

어언 30여년 저 쪽의 일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교사발령을 받아 임지에 부임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주말에 새로 온 직원들을 위한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행사는 광양의 백운산으로 고로쇠물을 마시러 가는 것이었지요. 하필이면 그걸까 싶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걸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이기적인 기성세대들의 행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내심 자연을 훼손해가면서까지 사람의 건강을 챙기는 일에 고로쇠수액의 채취도 포함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멀쩡한 나무에 상채기를 내서 호스를 매달아 놓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통에 받아 뜨겁게 달군 온돌방에 퍼질고 앉아 북어포나 건오징어를 오물거리면서 갈증을 키워 고로쇠 물을 연신 들이키는 건강체험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는데 저는 영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운 오리새끼는 되고싶지 않아 마시는 시늉엔 부지런을 떨었지요. 심한 정도가 아니면 상처가 난 고로쇠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야 고로쇠물 채취에 대한 오해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당기지는  않습니다.

제주도나 거문도에선 이미 쑥캐기가 시작되었다지만 그건 온전한 자연산이라 할 수는 없어 봄동으로 밥상을 차려보았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밥상에라도 담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쪽 바닷가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 푸른 생명력이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김장김치가 알맞게 익어 깊은 맛을 내고는 있지만 매번 밥상에 오르다 보니 심드렁하여진 것이지요. 시금치도 별로 새롭지가 않고 매생이나 감태 파래도 연신 먹다보니 좀 물렸거든요.

봄동을 데쳐 나물로 무치고 된장을 풀어 국을 끓였습니다. 생선이 귀한 요즈음, 한파 몰아치는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 황태도 자연의 이치를 닮은 맛난 식재료입니다. 황태를 손질하여 불리고 물기를 빼서 유장을 발라 애벌구이를 하고 다시 양념장을 발라 굽는 황태구이도 마련하였습니다.

내친 김에 밥도 변신을 시켰습니다. 냄비에 불린 쌀과 서리태 찰보리쌀과 밤을 섞어 밥을 앉히고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서 10분 정도, 다시 약한 불에 10여 분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에 약간 센불로 잠깐 가열하여 밥의 수분을 날린 다음 바로 밥을 풉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나무주걱으로 여러번 문질러서 잠시 불린 다음  팔팔 끓여 숭늉과 누룽지를 만들었습니다.

별미밥에 봄동나물과 봄동된장국 달래장 황태구이를 곁들이니 밥상은 봄기운으로 가득합니다.
'梅經寒苦發淸香'
매화는 혹한의 고통을 이겨내야 맑은 향을 품고 피어나듯, 기다리는 봄도 쉬 오지 않는다는 섭리에 순응하렵니다. 풋풋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봄동과 황태구이로 차린 밥상을 물린 다음 구수한 숭늉 한 공기 마시고 끓인 누룽지 서너 숫갈로 입가심을 하니 이게 바로 봄이고 보양식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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