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설날에 드시는 세시음식으로 떡국을 꼽는 데 주저하실 분은 아마 없으시겠지요.
이처럼 떡국은 전통적인 설음식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명절 분위기를 맨 먼저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떡국에 쓰일 가래떡을 연신 뽑아내는 동네의 떡방앗간이니까요.

지금이야 가래떡을 아무데서나 손 쉽게 구할 수가 있지만 예전에는 가래떡도 모두 집에서 만들어 썼습니다. 멥쌀을 물에 불려 가루로 빻아 시루에 쪄낸 다음 돌확에 떡메로 쳐서 차지게 만든 떡덩이를 함지박이나 옹자배기에 담아놓고 한 덩이씩 떼어서 다시 수 차례 치댄 다음 양손으로 길게 늘려 참기름을 발라가며 가래떡을 만들고 조금 굳어지면 바로 썰어서 떡국떡을 만들었습니다.

가래떡을 길게 늘려 뽑는 까닭은 '장수와 재물이 쭉쭉 늘어나라'는 축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네요. 이보다 진일보한 방식이 가래떡을 방앗간에서 뽑아 와 꾸덕꾸덕해지면 부리나케 칼로 써는 것이었는데 많은 양을 신속히 처리하려니 어머님들의 손은 명절이 오기도 전에 물집이 생겨 쓰라리기 일쑤였습니다.

설음식이 어디 떡국 뿐이었겠습니까. 유과 식혜 수정과 정과 쑥인절미 차례에 올릴 각종 생선이며 전 나물에다 세배 오시는 손님들이 즐겨 드실 일품요리까지. 선대의 어머님들이 감당하셔야 될 명절준비는 헤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고단한 안살림을 한결같이 이어오신 어머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숙연해진 마음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집니다.

설이 다가오면 맨 먼저 하시는 일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기와장을 갈아 만든 가루를 짚뭉치에 묻혀 놋그릇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으시는 일이었습니다. 바람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날을 택하여 놋그릇을 닦는 마당엔 그 일을 거들기 위한 동네 아주머님들까지 여러 분 와 계셔서 한가하던 집안이 왁자해져 마치 잔칫날같아 보이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설날 아침에 먹는 떡(添歲餠)의 모양은 어슷썰기가 아닌 동그란 형태였다고 하는데 이는 둥근 떡의 모습이 해를 상징하기도 하고 옛날의 화폐인 엽전을 닮은 터라 재화가 풍족하기를 바라는 새해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고도 합니다.

개성지방은 가래떡을 가늘게 비벼 늘여서 나무칼로 눌러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 조랭이떡을 사용했지요. 조랭이떡의 유래는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의 유신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는데 그들은 이를 거부하다 죽음을 당했고, 신하들의 부인이 자신의 남편과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를 원망하던 중, 한 부인이 가래떡을 썰다가 이성계의 생각에 그만 썰고 있던 떡을 이성계의 목으로 착각하고 떡 한 가운데를 꽉 조였더랍니다. 그러다가 만들어진 떡이 조랭이떡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얘기는 조랭이떡이 아이들의 주머니나 옷끈에 매달아 액막이로 차는 조롱박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길함을 상징하는 누에고치의 형상에다 설날의 상서로운 기원을 담아 만들어낸 떡이라고도 합니다.

떡국울 맛나게 끓이는 법은 양지머리 삶은 육수나 사골국물의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에 간을 맞추고 끓어오르면 다진마늘과 떡을 넣고 떡이 떠오르거든 바로 불을 꺼야 쫄깃거리는 떡맛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고명으로 얹을 달걀지단과 양지머리편육 대파채 김채는 미리 준비해둡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만두를 빚어 넣기도 하고 산적을 부쳐 꾸미로 얹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고기장이라 하여 꿩이나 닭고기를 토막내어 집간장에 짜게 조려놓고 떡국 끓일 때마다 이것으로 국물을 내어 조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육수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경우엔 국거리용 소고기를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물 붓고 푹 끓여 국물을 만들고 집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다진 마늘과 떡을 넣고 끓어오르면 달걀 푼 물과 대파채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 낼 때 김채나 석이버섯채를 고명으로 얹습니다. 식성에 따라 굴이나 매생이를 조금 넣으셔도 색다른 맛이 납니다.

서러워서 설이란 말도 있듯이 오랫만에 만난 친척들한테 덕담을 하신다는 게 오히려 화가 되는 수도 있지요. 함께 염려하는 뜻으로 건네신 말씀이 상대방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덕담은 상대의 장점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선에서 그치시는 게 온당하지 않겠는지요. 다가오는 설날엔 주부님들로부터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끔 가족 모두가 작은 일이라도 서로 거들어서 설명절이 즐거운 가족화합의 날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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