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토요일을 기다립니다. 오후 1시10분 MBC TV에서 방송되는 외화 `과학수사대`를 보기 위해서지요. `과학수사대`는 홍콩배우 홍금보가 나오던 `동양특급 로형사`의 후속 외화시리즈입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수사물이지만 이 드라마엔 이름 그대로 과학이 있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사람의 복잡미묘한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있고,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중 한번도 기대를 저버린 게 없었지요.




특히 비행기 1등석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나 산속에서 발견된 뼈를 근거로 살인자를 추적하는 사건, 장애인 살인사건을 다룬 것 등은 시청 뒤 오랫동안 `사람 사는 일`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1등석 살인사건`은 비행기 1등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한 결과 괜스레 의자를 발로 차고 난동을 부리는 한 남자를 여러 사람이 폭행, 결국 죽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승무원과 승객 모두 죽은 남자가 혼자 말썽을 피우다 쓰러진 것처럼 입을 모으지요.




알고 보니 죽은 남자가 소란을 피우자 위협을 느낀 승객들이 집단폭행한 것이었지요. 분명히 가해자가 있는 살인사건에 가까웠지만 승객들은 정당방위로 인정돼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만 알고 보니 죽은 사람은 뇌염에 걸려 있었고 따라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발광 상태에 빠져 있었던 건데 아무도 그의 이상행동에 대해 "왜 그러는가, 어디가 불편한가"라고 묻지 않고 그로 인한 자신의 불편함만 강조, 그를 몰아붙였던 것이지요.




수사팀들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결론지은 이 사건에 대해 단 한사람 반장은 이렇게 외칩니다.




"누군가 한사람만이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냐, 어디가 아프냐,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한사람만, 더도 말고 한사람만이라도 힘들어 하는 이유를 묻고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구요.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저립니다. 죽은 남자의 고통이 떠오르고, 오래전 고인이 된 시인 기형도씨가 타계 얼마 전 회사 일로 힘들어 하며 전화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툭` 끊어버린 일도 마음에 걸리고, 제가 몹시 고통스러울 때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주위의 선후배 때문에 더욱더 죽을 것같던 상황도 새삼 떠오르고.......




//산속에서 발견된 뼈를 근거로 살인자를 찾는 사건은,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싶어 섬뜩하면서도 가슴 아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사 결과 살인자는 죽은 사람의 부인이었지요.




알고 보니 불치병으로 오래 아프던 남편이 죽여주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은 부인이 연금을 거의 못받게 될까 봐 죽은 걸 신고하지 말고 시체를 감쪽같이 처리하라고 하는 바람에 시체를 토막내 산속에 버렸던 겁니다. 참, 이런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수사팀은 미제사건으로 처리하고 맙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 살인사건은 우리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는 미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한 지를 보여주었지요. 고등학생 몇 명이 청각장애로 말을 못알아듣는 청년에게 맥주를 사다달라고 부탁했다가 장애인청년이 놀라서 당황하자 거절하는 줄 알고 때려 숨지게 한 뒤 뺑소니사건으로 위장한 것이었지요.




장애인은 대문 밖에 나오기조차 힘든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서 미국은 좀 나으려나 하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분명 오락물입니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교훈적이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사람과 세상의 현실에 대한 직시나 심층분석 없이 남자 혹은 여자 덕에 출세하고 돈과 지위를 거머쥐는 온달이나 신데렐라 얘기에만 빠져있을 건지요.




TV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는 새삼 거론할 여지가 별로 없지만 그렇더라도 국내 공중파TV 드라마(일일극, 주말극, 월화/수목드라마,시트콤)의 남녀상과 현실인식은 사실과 너무 동떨어져 보입니다.




순진함과 철딱서니없음, 당당함과 되바라짐이 동일시되고, 깡패의 무분별한 생활은 순정으로 포장되고, 가난한 여자는 하필 깡패와 재벌2세 사이에서 갈등하고, 부잣집여자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게다가 가난한 여자는 무조건 선하고, 돈있는 여자는 무조건 악하고.....




TV외화를 일방적으로 칭찬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과학수사대`도 뜯어보면 현실과의 괴리가 큰 대목들이 있을 겁니다. 반미감정에 충실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식 영웅주의`의 또다른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만 봤을 때 `과학수사대`엔 적지만 힘있고 목소리 큰 다수의 그늘에 가려진 소수에 대한 관심과 주목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 힘없는 자에 대한 배려란 현실을 똑바로 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스스로 홀로설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하는 것이지, 누군가 다른사람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계단 위로 올라서는 특별한 경우를 보여줌으로써 그렇지 못한 대부분에게 대리만족이나 허위의식에 빠지도록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우리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여성은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만 있으면 되고`, 남성은 `아무리 애써도 원래 부자로 태어난 놈한테는 못당하는` 그런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할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차근 접근하고, 한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헛된 꿈을 좇지 않고...... 그럴 때 현실은 분명히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현실에 무시로 배신당하는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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