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씨 있어요?" "퇴근하셨습니다"


"그럼 000씨는?" "출장중이십니다"


"오늘 그거 000씨가 썼나?" "잘 모르겠습니다"


"음∼그럼 0실장은?" "회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에... " "말씀 다하셨으면 그만 전화 끊으시지요"


"뭐? 무슨 전화를 그런 식으로 받는 거야∼, 요?"


"전화 거시는 분께서 먼저 말 꼬리가 없으셨지 않습니까"


"뭐라구? 전화받기 전에 누구랑 싸웠어요? 전화를 그런 식으로 받게"


"전화하신 분이 먼저 예절을 지키셨어야지요"


"대∼단하네요, 참"




바로 엊그제 다른 사람에게 온 전화를 받은 결과 일어난 일입니다. 전화받는 사람이 여비서인줄 알고 함부로 말하기 시작했다가 도중에 아닌 걸 충분히 알았으면서도 본인의 잘못은 아랑곳 없이 "대∼단하네요∼"하고 빈정거리면서 전화를 끊은 것이지요.




물론 전화 거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일로 이사람 저사람을 찾는 지에 대한 설명은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받으니 다짜고짜 하대를 시작했다가 이쪽에서 고분고분하게 대해주지 않자 기분이 나빠진 것입니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가끔은 전화 때문에 언짢은 일을 겪게 됩니다. 민원부서에 있는 사람의 고충은 두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다른사람의 전화를 대신 받았다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엉뚱한 화풀이를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더러는 상사나 또는 상사의 친구로부터 "야! 자!"식의 반말을 듣게 되기도 합니다.




위의 경우만 해도 전화한 사람은 찾는 사람들과 가깝다는 표시로 "계세요"가 아니라 "있어요" 혹은 "000는(은)" 식으로 말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상대방이 누군지, 찾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인지 알 길 없는 제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설사 제가 아니고 여직원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여직원이라고 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식의 하대를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남자들도 불쾌한 일을 당하는 수가 있으려니와 전화로 인한 어이없고 기막한 사건은 많은 경우 여성들의 몫입니다. 직장에 전화를 걸어 여자가 받으면 무조건 반말조로 나오는 게 버릇이 된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 경우만 해도 십수년간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기자 바꿔"라든가 "이부장 있는가?"식의 말에 시달렸고, 나보다 연장자의 전화를 받게 되는 일이 거의 없는 지금도 앞의 경우같은 일을 종종 당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지난해말 H일보에 실린 기사내용은 지금도 대한민국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의 작디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언제쯤 돌아오실 건가”“잘 모르겠습니다”“알았다”>




서울시 한 자치구의 부구청장과 시 본청 모국장실 여비서와의 전화통화 내용인데 여비서가 인터넷사이트에 통화내역과 함께 “직장상사라 하더라도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반말로 계속 하대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글을 띄워 기사거리가 됐습니다.




당시 해당시청에선 “상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에까지 글을 띄운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부하직원을 그렇게 대하는 상사는 혼이 나야 한다” “민원전화는 친절하게 받으라고 지시하면서 정작 간부들은 왜 교양없이 전화를 하느냐”는 등 여비서를 두둔하는 쪽이 많았고 공무원직장협의회도 부구청장의 실명을 공개하라며 여비서편에 서는 바람에 해당 부구청장이 전화로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됐다고 합니다.




기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시청 직원들의 전화예절이 한층 깍듯해졌다"고


쓰여 있었지만,글쎄.그 여직원이 그 뒤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이 경우는 그야말로 양반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냐"가 아니라 "계시냐"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앞서 내가 당한 것처럼 전화거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말하지 않고 전화받는 사람과의 관계 등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채 "누구누구 있냐" 혹은 "누구누구는..."하고 어미 없이 말합니다.




흔히 전화는 벨이 울리자 마자 받고/ 세 번 이상 울린 뒤 받을 때는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담당자가 바쁠 때나 다른사람에게 걸려온 전화라도 받을 사람이 없을 때는 자리에서 멀더라도 가서 받고/ 등등 전화를 친절하게 받으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말이란 본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 아닐까요. 먼저 소속과 이름을 밝힌 다음 용건을 얘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절` 없이 여자에겐, 혹은 자신이 찾는 사람이 그 직장의 `높은 사람`인 경우 받는 사람에게 무조건 말부터 놓고 보는 식인 사람을 어떻게, 무슨 수로 친절하게 대해 줄수 있을지 알기 어렵습니다.




전화로 하는 말은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과 다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게 마땅합니다. 도대체 여직원이나 아랫사람에겐 무조건 말을 놔도 된다는 게 법전 어디에 써 있는지 알수 없는 마당에 버릇, 습관, 관행을 핑계로 고치지 않는 건 진정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아랫사람한테까지 존대말을 쓰란 말이냐" "말도 마음대로 못하냐"라는 식의 이의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이란 주고 받는 것입니다.받는 사람이 기분나쁘면 어떤 경우에도 친절한 응대는 불가능해집니다.설사 그 순간엔 참는다고 하더라도 두고 두고 전화한 사람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지니게 되구요.




그러니 제발 이제부터라도 누구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을 기억했으면 싶습니다. 한번쯤 입장을 바꿔보거나 최소한 "내 딸, 내 형제, 내 와이프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내 마누라, 내 딸은 직장같은 데 안내보내지!"란다면 도리 없지만요.




제 경우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 지는 다음날 곧 알게 됐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식의 태도론 오래 못갈" 게 너무 뻔한 만큼 직접적 대응은 참기로 했습니다.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라고 합니다. 전화는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니 단언하건대 기초적인 전화예절조차 안지키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이 속한 조직은 곧 도태될 겁이다. 여직원 교육만 시킬 게 아니라 임원들에 대한 기초 재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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