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우쭐한 명예의 유혹을 통해서만, 그리고 불멸성이라는 도깨비불의 도움으로만 창조작업을 하며 군인은 자기 망상의 도움이 있어야만 용감해진다. 약은 사람은 냉정하게 모든 싸움에서 도망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득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만 할 것이다.......




즐거움이란 결코 명료함과 명민함에 있지 않고 언제나 도취와 열광, 흥분, 망상에 있다. 약간의 우매함은 모든 진실된 삶에 속하며 정직한 사람, 통찰력이 있는 사람, 열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비정상을 뜻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라고 들어보셨는지요?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42년 브라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입니다. 전기물을 많이 썼지만 `모르는 여인의 편지`같은 멜로소설도 썼습니다.




국내엔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에세이집으로 알려졌지만 제 경우엔 `마젤란` `에라스무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같은 전기물 쪽에 더 마음이 갑니다. `체스` `촛대의 전설` `감정의 혼란`같은 소설도 물론 괜찮구요.




//츠바이크의 특징은 승자보다 패자의 삶, 일생동안 노력했으나 살아있는 동안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 점이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지요.




//전기 혹은 전기소설은 대개 영웅을 소재로 삼습니다. 당연히 주인공의 삶을 미화하게 마련이지요. 제 경우 나폴레옹의 키가 그렇게 작았다는 사실을 꽤 커서야 알았는데 이유인즉 초등학교 때 읽은 전기에서 나폴레옹이 하도 멋있게 묘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인가요. 중학교 때까지 조세핀을 미워했는데 제가 읽은 전기에 나폴레옹의 조세핀에 대한 사랑이 너무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었던 탓입니다. 후반에 정략적 이유로 조세핀을 내친 대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됐던 것이지요. 아무튼 많은 전기가 이처럼 주인공을 영웅시하는 대신 주변인물과의 관계는 왜곡되는 수가 많습니다. 업적 쪽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인간적인 약점이나 단점은 감춰지는 경우도 허다하구요.




//츠바이크의 전기는 바로 이런 대목에서 다른 많은 전기물과 구분됩니다. 츠바이크의 전기는 다루는 인물을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그려내고자 합니다.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서 균형과 공정성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냉정한 판단력과 관찰력으로 한 인물이 이뤄낸 일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꼼꼼이 기록하고 그 사이사이에 벌어지는 주변인간과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사람의 성격과 움직임, 판단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떤 상황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적고 있는 것이지요. 순간의 판단이 한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는 지도 세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가 진실로 어떻게 살았는가`를 중시하는 것이지요.




//처음에 소개한 `에라스무스`는 대표적인 경우지요.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의 열풍이 한창이던 15세기 중반에 태어나 16세기초까지 살았던 언어학자이자 종교사상가 성서번역가 그리고 작가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신부였지요.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사생아였습니다. 그것도 신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전기는 이같은 사실을 가감없이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일생을 신부로 살았으면서도 예복 한번 제대로 입은 적이 없는 자유인이었다는 점도 있는 그대로 전합니다. 또한 언제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가 얼마나 냉소적인 인물이고 그 결과 당연히 얼마나 외로웠는 지도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과 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의 다른 대목도 소개합니다.




//"이땅의 모든 악한 것들을 일격에 변화시킬 수 있다는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환상은 에라스무스에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혼자서는 변화시킬 수 없고 겉보기에 속고 속이는 일이 인간사에 속하는 동시에 영원불변한 것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버리는가. 에라스무스는 침착하게 생각한다. 영리한 자는 불평하지 않으며 현명한 자는 흥분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너무 이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고 정열이 부족하며,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중립의 자세, 모든 사물 위에 존재하려는 자세가 자기를 생동의 힘과 동떨어지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이성은 항상 규제의 힘일 뿐이며 자기 혼자만으론 결코 창조의 힘이 되지 못한다. 원래 생산적인 것이란 언제나 어떤 환상을 전제로 한다. 에라스무스는 놀라울 정도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생동안 늘 정열이 없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리고....`에라스무스`의 마지막 장인 `에라스무스의 패배와 방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때 정신을 통한 세계의 부활과 더욱 순수한 인간성을 통한 인류의 개혁을 열정적으로 믿었던 그는 점점 날카롭고 조소적이며 빈정거리는 남자가 돼간다. 매일 이성이 격정에 공격당하고 정의가 폭력에 습격당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점점 더 낯설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갑자기 츠바이크와 `에라스무스`가 다시 생각난 건.... 선거와 인사이동의 계절을 맞아 사방에서 저 잘났다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서 문득 쓸쓸해졌기 때문입니다. 화창한 봄날에 다소 어두운 얘기를 전하는 듯하지만, 주어진 상황 때문에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됐으면 싶어 소개했습니다.




물론 읽은 뒤엔 에라스무스나 츠바이크와는 달리 "두 주먹 꼭 쥐고, 신발끈 다시 매고, 입술도 꽉 깨물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까요. 에라스무스보다는 루터 편에 서보는 것도 괜찮을 듯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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