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음식은 햇밀이 나오는 여름에 주로 많이 만들어 먹는 시절음식입니다.
기계로 뽑은 국수는 잠깐의 손만 거치면 음식이 완성되는 식재료인 게 매력입니다.
사실 뜨거운 여름에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기 때문이지요.
세 끼의 식사를 마련해야 하는 휴일 점심으로 밀가루 음식이 제격입니다.

밀가루를 손으로 반죽하여 랩으로 싸서 냉장해 두었다가 꺼내 다시 치대기를 두어 번 반복하면 반죽은 아주 차지고 부드러워 집니다.
반죽에다 녹차가루나 쑥가루를 넣어도 색다른 모양과 맛을 내지요.
잘 숙성된 반죽을 넓은 도마 위에 놓고 밀방망이로 밀어 칼로 썰면 질 좋은 수제 면이 만들어집니다.
칼국수에 알맞은 국물은 멸치육수나 바지락 아니면 새우나 낙지같은 해물을 쓰시는 게 개운하지만 좀더 진한 국물을 원하시면 기름기 제거한 닭고기나 양지머리 육수를 준비하여 냄비에 팔팔 끓이다가 만들어 놓은 면을 엉키지 않도록 살살 털어 넣습니다.
기호에 따라 표고버섯이나 애호박 감자를 채 썰어 넣으셔도 좋지요.
마지막에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다진 마늘과 참기름 몇방울 떨어뜨리면 칼국수의 풍미가 더해지지요.
상에 내실 때엔 달걀지단이나 김가루같은 고명을 얹으셔서 담음새를 맵시 있게 하시면 좋습니다.

반죽을 손으로 뚝뚝 떼어서 만든 수제비도 별식입니다.
수제비반죽은 칼국수보다 더 묽게 해야 하는데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어도 좋아요.
밀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는 칼국수보다 조리법이 훨씬 더 간단합니다.
끓는 멸치육수에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왼손으로 쥐고 물을 묻혀가며 오른손으로 얇게 늘려 한 입 크기씩 떼어 넣습니다.
수제비가 익어 국물 위로 동동 떠올라오면 칼국수와 같은 방법으로 간을 맞추고 양념을 하여 완성시킵니다.
간은 슴슴하게 하여 청양고추를 다져넣은 양념간장 곁들이시면 식성대로 맛을 내어 드실 수 있지요.
전통방식으로 멸치육수에 끓여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의 수제비집은 제가 즐겨 찾는 맛집입니다.

요즈음처럼 희고 고운 밀가루는 아니지만 그해 초여름 수확한 햇밀가루로 만들어주신 어머니표 칼국수도 수제비도 모두모두 눈물나게 그리워지는 음식들입니다.
동네 정미소에서 빻아오신 밀가루를 이스트로 발효시켜 부풀어 오른 반죽에 굵직굵직한 강낭콩 얹어 쪄낸 밀개떡이나 팥앙금 소로 넣고 쪄주신 찐빵은 어찌 그리도 달고 맛났던지요?
까탈스런 아버지 시중드시랴 여념이 없는 와중에서도 저희들에게 주실 간식거리 마련하시느라 땀 뻘뻘 흘리며 무쇠솥에 불지피시던 어머니의 그 발그레한 얼굴에서 작은 聖者의 모습을 읽습니다.
어리석은 게 인간인지라 그 때엔 철딱서니 없어 알지 못했던 그 크신 사랑을 이제사 조금씩 헤아리게 됩니다.

"내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고 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받고 살거라......
눈 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을 빌고 왔제......."
눈이 하얗게 내린 신새벽, 아무런 뒷바라지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처지의 노모가 어린 자식을 대처로 떠나보내고 눈길을 밟으며 마을로 돌아오는 노모의 처연한 심회가 절절하게 묘사된  미백 이청준 선생님 소설미학의 白眉라 할 수 있는 <눈길>의 마지막 대목이 떠오릅니다.

반갑지 않은 비소식이 오늘도 있네요.
잔뜩 찌푸린 하늘의 모습이 험악합니다.
가벼운 음식 장만하셔서 오붓한 휴일 가족과 함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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