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기간 동안 "누가 뭐래도 일본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본 일본은 계속된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회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이었습니다. 적어도 제 기준으로는 말입니다.




여정은 오사카에 도착, 오카야마를 거쳐 히로시마에서 돌아오는 것이었지요. 오사카의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열린 `2002 서울 스타일전` 개막식에 참석하고 오사카의 동양도자기박물관, 야요이문화박물관, 역사박물관, 시가의 비와코박물관, 히로시마현립미술관 등을 둘러 봤습니다.




`2002 서울스타일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일본의 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기획전입니다. 서울 반포에 사는 3세대 가정의 생활용품을 고스란히 옮겨 보여주는 독특한 전시회지요. 2002년 서울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삶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낡은 침대보를 포함한 온갖 집안 살림살이는 물론 남편이 받은 표창장, 부인의 옛직장 신분증, 아이들의 상장까지 정말 한 가정의 어제 오늘을 보여주는 갖가지 것들이 놓여 있더군요. 사소한 물건들이 전시자료가 돼 2002년 한국인의 삶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돌아가면 나도 우리 가정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동양도자기박물관엔 재일교포인 이병창씨가 기증한 우리 도자기가 놓여 있어 반가웠습니다. 늘 느끼는 겁니다만 동양 도자기 가운데는 역시 우리 도자기가 가장 은근하고 품위있어 보입니다.




야요이문화박물관은 선사시대 일본의 역사를, 역사박물관은 일본의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NHK건물과 연결된 현대식 건물에 들어있더군요. 비와코박물관은 일본 최대의 호수라는 비와코호수 근처에 있는 것으로 비와코호수에 사는 각종 물고기를 보여주는, 이른바 민물고기 전시관같은 곳입니다.




히로시마현립미술관은 `살바도르 달리`같은 서양작가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조선왕조의 미` 특별전을 하고 있더군요. 입구엔 한복을 입은 일본아가씨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옷이 구겨진 데다 고름도 잘못 매고 있어 언짢았습니다. 게다가 신라 금관의 경우 제대로 디스플레이가 안돼 초라해 보이더군요.




무슨 물건이든 어디에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품격이 `확` 달라 보이는 건데 좌대와 배경이 적절치 않은데다 조명까지 제대로 안돼 금관의 수려함이 드러나지 않았지요.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관람객이 적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비싼 전시도록과 기념품을 사는 걸 보고 나름대로 전시의 효과가 있겠다 싶어 위안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놀라고 부러웠던 것은 박물관 자체보다 박물관의 구성요소및 일본의 길(도로)이었습니다. 종래 일본에 갔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됐기 때문이지요.




박물관에서 놀란 건 어딜 가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학습공간이 넉넉히마련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서가와 자유롭게 앉아서 자료를 읽고 적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영상자료를 볼 수 있는 비디오시설 등 학생들을 위한 공간과 도구가 가장 좋은 위치에 장만돼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닌 자라나는 세대의 학습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옛것에 대한 이해없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살린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그런 만큼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일본인의 경쟁력을 언제 따라가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박물관이든 입구에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가 구비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돼 있었죠. 물론 휠체어를 탄채 위 아래를 오며가며 볼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있었구요. 휠체어가 있다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고 설령 이용한다고 해도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없어 1층밖엔 구경할 수 없는 국내와 그야말로 `너무` 비교돼 가슴 아팠습니다.




뿐인가요. 하루에 1만보 이상 걷는 강행군을 계속하면서 일본의 도로가 준 놀라움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걸어본 길 어디도 우리나라 길처럼 울퉁불퉁하지 않았습니다. 보도 어느 곳도 우리처럼 50m도 못가 끊어져 있지 않았구요. 모든 보도는 휠체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자연스레 연결돼 있었습니다. 경사 또한 완만해서 기울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요.




게다가 어느 보도에나 자전거도로가 있었는데 중앙에 장애인용 블록(우리나라에도 요즘 늘어나고 있습니다. 약간 올록볼록하지요)을 깔아 시각장애인이 자전거와 부딪치지 않도록 해놨습니다. 횡단보도 입구에도 물론 시각장애인용 올록볼록 블록을 빠짐없이 깔아 놨더군요. 시각장애인들이 무심코 차도로 내려서지 않도록 말입니다.




최근 서울에도 횡단보도 앞에 시각장애인용 블록을 설치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벽돌색으로 돼 있는데 일본은 모두 노란색이더군요. 그러나 서울의 경우 아직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찾기 어렵습니다. 보도의 턱은 왜 그렇게도 높고 많은지요. 서울에서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자가 혼자 거리를 다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전거도로라고 만들어놓은 곳들조차 툭 하면 턱 때문에 끊어지고 울퉁불퉁해 1백m도 못가 내려야 하기 일쑤니까요. 경기도 일산의 경우 자전거도로를 만든답시고 보도블록 대신 포장을 했지만 연결부분의 경사가 심해 잘못하면 고꾸라지기 십상입니다.




일본의 간판은 또 얼마나 깨끗하던지요. 세상에 어느 빌딩에도 간판이 우리나라처럼 덕지덕 지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세로간판의 경우 하나의 판넬에 칸만 구분해 각기 다른 글씨체로 깔끔하게 상호를 적어놨고, 가로 간판 역시 작고 소박했습니다. 울긋불긋하지도, 끔찍하게 크지도, 번쩍번쩍 요란하지도 않더군요.




또한가지, 호텔 37층에서 내려다본 건물의 옥상과 지붕은 왜 그렇게 깨끗한 지..... 정말 부럽다 못해 울화가 치밀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 가슴을 저미게 한 건 도로와 박물관의 장애인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소수를 위한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가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선진국이다 싶었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한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의식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다면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건,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입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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