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모란, 사진 조현숙>

오늘이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찬다'는 소만(小滿)입니다.
소만은 입하(入夏)와 망종(芒種)사이에 있는 음력 4월 중기로 태양이 황경 60도에 도달한 날이 入氣日이 되고 양력으로는 5월 21일 경입니다.

이 시기엔 봄 밥상의 단골메뉴였던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고 씀바귀가 힘차게 뻗어나온다 하네요.
이 날을 전후로 농촌에서는 보리베기와 모내기가 시작되어 농사일이 무척 바빠지는 시기입니다.

뜨거워지는 햇볕을 받으며 땀 흘려 들일을 하셔야 하니 체력보충은 필수입니다.
사람의 입맛처럼 간사한 것이 없더라고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우리의 미각은 늘 새로운 먹을거리를 기대합니다.
때로는 담백하고 순한 식물성 음식이 좋다가도 벼란간에 기름지고 얼큰한 음식이 당겨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는 들밥(못밥) 내가시느라 예전의 어머님들은 이 때쯤 허리가 휘실 정도로 손길이 바쁘셨습니다.
들일 중간에 먹는 새참이나 점심은 어찌 그리도 맛났을까요?

찐 감자나 햇보리 볶은 것 아니면 보릿가루로 만든 개떡이나 밀가루 찐빵이 새참의 음식이었고, 점심은 감자 넣은 갈치조림과 북어포무침 돼지고추장불고기나 오이무침 묵은지나 깻잎조림같은 음식과 막걸리였지요.
강릉에 가면 예전의 그 들밥을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음식점(서지뜰)이 있다는데 꼭 한번 가볼려고 마음 먹고 있네요.

오늘은 주머니사정 잠시 접어두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좋아하실 맛난 보양식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주변의 여러 친지분들께 가장 좋아하는 한식 메뉴를 여쭈어 본 바, 소갈비구이(찜)와 낙지볶음이 제일 많이 나오네요.
소갈비는 정말 맛이 있지만 손질하기도 번거롭고 뼈가 있어 저 개인적으론 마아블링이 좋은 살치살이나 쫀득하고 부드러운 낙엽살구이를 더 좋아해 그것으로 대체합니다.

육질이 좋은 고기는 양념 없이 생으로 구어도 맛이 좋지만 달달한 양념에 재웠다가 구우시면 어른 아이 누구나 다 즐기실 수 있지요.
약간 도톰하게 썰어진 살치살이나 낙엽살 구입해서 칼집을 넣고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긴 다음, 배즙과 양파즙 맛술 후추 설탕(올리고당이나 조청) 다진 마늘과 생강 진간장을 잘 혼합한 양념장에 하룻밤 정도 재웁니다.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달군 다음 센 불에서 제빨리 겉면을 익혀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한 다음 중불로 고기 속까지 서서히 익힙니다.
이때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고기를 구우면 양념이 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간이  짜지는 것도 피할 수 있습니다.
뜨끈하고 윤기가 자르르 도는 너비아니 구이 위에 잣가루나 통깨 뿌려서 쌈채나 야채겉절이와 함께 내시면 식탁에 둘러 앉은 가족들은 행복 만땅입니다.

낙지볶음은 낙지의 질이 좋아야 질기지 않고 맛이 좋지요.
가장  좋은 낙지는 요즈음 목포나 무안의 뻘밭에서 잡히는 야들야들하고 몸집은 작지만 발이 가늘고 긴 세발낙지입니다.

뻘밭의 산삼이라고도 불리는 세발낙지는 출하량이 적고 값이 너무 세서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지에서나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세발낙지는 그냥 통째로 죽 훑은 후에 입안에서 잠시 오물거리다가 꿀꺽 삼켜버리는 게 낙지고수들이 즐겨 드시는 방법입니다.

볶음용 낙지는 어차피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는데 냉동 된 것은 피하십시요.
중국산보다는 일본산이 더 낫고 손으로 빨판을 만져보면 들러붙는 것을 구입하시면 선도가 좋습니다.

들일에 지쳐 탈진한 소에게 낙지 두세 마리만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쓰여진 일화는, 낙지의 효능을 짧고재미 있게 표현한 것이지요.
낙지는 머리의 내장과 먹통을 따버리고 눈과 입 부분도 제거하여 깨끗이 손질합니다.
다음엔 소금을 넣어 바락바락 문질러 맑은 물에 여러번 헹구어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뺍니다.
손질된 낙지를 끓는 물에 넣었다 바로 건져냅니다.

데친 낙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함께 들어갈 야채(양파 청양고추(청,홍) 대파 당근 미나리)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놓습니다.
진간장과 고추장 매운고춧가루 설탕 참기름 다진마늘과 생강을 혼합하여 양념장을 만듭니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뜨겁게 달군 다음 준비된 재료를 모두 넣고 양념이 고루 스미도록 나무주걱으로 뒤적이며 제빨리 익힙니다.
너른 접시에 낙지볶음을 담고 위에 통깨를 뿌려 상에 냅니다.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 또는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이즈음의 불순한 일기를 일컫는 속담이 있습니다.
조현숙 님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빗방울이 아니라 우박알갱이네요.
초여름인데도 기층이 불안정하면 국지성 우박은 언제든 내릴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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