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숙 님이 꺾은 고사리>

곡우를 지났으니 못자리 마련으로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되고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지니 봄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지 싶네요.
매마른 대지를 뚫고 파랗게 돋아난 달래며 냉이 쑥같은 들나물들이 봄볕을 넉넉히 받아 이젠 조금 세어졌습니다.
그 자리를 풋풋한 향을 머금은 산나물들이 연록의 새순을 틔워내니 우리의 시각과 미각은 다시 즐거워 집니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의 3월령에서 이즈음의 먹을거리들에 관해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
우리나라 각처의 햇볕이 잘 드는 산에서 자란다는 삽주는 봄철에 부드러운 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쌈을 싸서 먹기도 한다네요.
향이 좋은 두릅과  쌉사름한 도라지나 식감이 좋은 고비나 고사리는 우리의 밥상과 아주 친숙한 산나물들입니다.

그 중 꼭 제철에 먹어야만 본래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두릅은 향이 일품입니다.
앙상한 나무 줄기에서 신기하게도 오동통한 새순을 내미는 두릅 순을 따서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 초회는 4월 중순에서 오월 초면 그 생명력이 사라집니다.
냉동해서 먹는 방법이 있지만 맛과 향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산나물은 아니지만 地氣를 흠뻑 머금고 돋아난 죽순도 요새 맛 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입니다.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겨내고 살짝 데쳐 아린 맛을 우려낸 뒤 초회로 만들거나 반으로 가른 죽순 가운데에 소고기 다진 것을 갖은 양념하여 채워 넣고 쪄낸 죽순 찜도 맛깔스런 음식입니다.
죽순은 데쳐서 냉동하여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셔도 좋습니다.

걸핏하면 유행성 돌림 병으로 홍역을 치루는 게 육류이고 보면 죄 없는 가축들의 수난이 안타깝습니다.
탈이 많은 육류보단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에 좋은 식재료를 수산물에서 찾게 됩니다.

봄철 조개더라고 독성이 없고 요즘 맛이 좋은 백합이나 키조개 가리비를 살짝 익혀서 두릅과 죽순 데친 것을 곁들이면 두릅 삼합 또는 죽순 삼합이 되겠고, 살이 통통 올라 육질이 부드러운 갑오징어도 살짝 데쳐 이들과 함께 담아 내면 또 갑오징어 삼합이 되겠네요.

햇고사리를 밑에 깔고 참조기 매운탕을 끓여도 색다른 맛입니다.
무우나 쑥갓을 넣고 조리하는 법이 일반적이지만, 산에서 갓 꺾어 온 고사리를 부재료로 쓴 조기 매운탕은 말랑하게 익은 고사리 건더기 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먼 산에서 고사리 꺾어 오신 분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식사를 하신다면 그 맛은 倍加되니 그게 밥상에서 얻는 행복이지요.

서대나 가오리도 손질하여 꼬득꼬득하게 말려 찜을 하면 봄철 반찬으로 푸짐하고, 민물 참붕어도 말린 무우청 시래기나 묵은지 우려낸 것 냄비 밑에 깔고 중불에 뭉근히 졸인 붕어찜도 요즘에 입맛 돋우는 음식입니다.
도심에서 민물 참붕어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등푸른 생선의 대표주자 고등어 묵은지 조림도 밥맛 당기는 찬거리 입니다.

푸르른 잎새들이 만산을 뒤덮어 눈이 부신 오월입니다.
평생을 한 곳에서만 사는 나무는 다른 식물의 자리를 범하지 않습니다. 
오월은 유난히도 가족의 단합과 보은의 미덕을 기리는 행사가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관용과 화합'
우리의 사회와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실천적 덕목 중에 이보다 더 절실한 화두가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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