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고 철도 없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여자로 만들겠어요" "나도 푼수끼 있어요"


요사이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 인터뷰 기사 제목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중매체들은 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여자는 똑똑하면 안되고 얼빵해야 한다던 어느 공무원의 말에 속으론 모두 공감한 때문일까요? 아니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처럼 강해지는 여성들이 무서운 데 대한 반작용일까요?




`엽기녀`라는 이름 아래 다른사람의 감정 따윈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구는 천방지축 여성들에 대해 `귀여운 여인`이라는 딱지를 붙여주는 겁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의 주인공은 그 대표적인 경우지요. 젊은 여자가 술에 만취해 지하철에서 모르는 남자 머리 위에 왕창 토해놓고, 처음 본 남자에게 하루도 아니고 이틀 연속해서 여관에 실려가고, 음식점에서 옆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걸핏하면 남자친구의 뺨을 때리고, 발이 아프다며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하이힐을 신긴 뒤 자신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고... 지하철역 방송실에 뛰어들어가 멋대로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뒤 마음의 상처를 달래느라고 그런다는 겁니다. 글쎄요. 남자주인공은 수시로 두들겨 맞고, 돈 내야 하고, 경찰서에 가고,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말썽만 피우는 `엽기적인 그녀`가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재미있다`는 데요. 아들 가진 저로선 참, 기절초풍할 노릇이지요. 물론 딸도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전 아들이 나가서 그런 꼴을 당하는 건 못볼 것같습니다.




뿐인가요. MBC TV의 일일극 `매일 그대와`에 나오는 세희(오미연의 딸 역할) 또한 세탁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하니 빨래거리는 세탁물통에 넣으라고 말하는 올케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옷을 침대 위에 몽땅 꺼내놓고 나가는가 하면 근무시간에 버젓이 쇼핑하러 다니는 등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습니다. 그런데도 드라마에선 그런 그녀를 `귀여운 여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젊은 여성이 천방지축, 철 없고 버릇 없는 엽기녀로 그려진다면 기혼여성들은 능력 여부에 관계없이 푼수에 남자와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허영심 덩어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KBS2 TV의 시추에이션드라마 `여자는 왜`에서 김무생의 며느리로 나오는 김영애 이휘향이 그렇고, SBS TV 일일극 `이 부부가 사는 법`의 김보연과 윤미라 또한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는 왜`의 김영애는 남편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푼수 여편네의 대명사처럼 등장하고, 이휘향은 돈밖에 모르는 허영덩어리로 나타납니다. ` 이 부부가 사는 법`의 김보연과 윤미라는 더욱 가관입니다. 노처녀 시누이로 나오는 윤미라는 속옷 빨래감까지 올케한테 들고 가고, 이런 시누이를 시집보내기 위해 김보연은 온갖 주책맞고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출합니다.




MBC TV의 `매일 그대와`에서 남편과 함께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는 오미연 또한 능력있는 세일즈우먼임에도 불구하고 돈 많은 며느리를 얻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얼토당토 않은 억지를 부리는, 떼쟁이로 나오지요.




영화나 TV가 개그화시키고 있는 건 여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남자주인공은 툭하면 여자친구에게 맞고 다니고, `여자는 왜`의 장남 용건은 백수로 한의사인 아버지와 동생한테 얹혀 사느라 눈치만 살피고 삽니다. 그런가 하면 무능한 형을 대신해 실질적인 장남 노릇을 하는 작은 아들은 인색하고 쫀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부부가 사는 법’에서 김보연의 남편으로 동사무소 직원인 송기윤은 경제적 무능 때문에 아내에게 쩔쩔 매고, 송채환의 남편 역인 김규철은 아내의 관심을 끌겠다며 머리를 박박 밀거나 `벗어나고파`를 외치며 젊은 여자와 몰래 데이트를 하지요. 김규철은 한술 더 떠 나이든 아버지가 재혼하면 머리를 밀고 산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징징댑니다.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주현 또한 소방대원으로 아버지와 아내는 물론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동생에게 주눅들린 채 먹을 것에 연연하는 징징이남편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합리적인 사고와 사려깊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가족으로 이뤄진 가정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돈이 있다는 이유로 자식들을 휘어잡는 아버지와 무능한 남편을 탓하며 억지를 부리는 아내, 철딱서니라곤 없는 딸 사이에서 눈치보기에 바쁜 남편들의 행진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상하고 우습게 보이는 TV일일극의 이런 모습들은,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 일단에 엄존하는 가정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 혹은 남편의 위상은 자꾸 초라해지고, 여자 혹은 아내의 형상은 엽기적으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 내지 가정의 현실이 다소 희화화된 상태로 표출되는 셈이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남자나 아버지의 모습도 어이없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주눅든 채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위상을 대하는 것 또한 슬픈 것 아닐까요.




남편의 처지나 심정 따윈 아랑곳 없이 몰아붙이는 엽기에 푼수를 더한 아내의 면모 또한 `따뜻하고 가족을 배려하는 주부`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먼 듯합니다.




TV드라마는 오락물이고 따라서 그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성격이 다소 과장될 수도 있지만, 온가족이 함께 보는 일일극의 경우엔 그래도 라면 지나친 요구일까요??




세상이 살벌하고 삭막하고 쓸쓸할수록 가족끼리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신경 쓰고, 살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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