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열매는 기도(The fruit of Silence is Prayer)


기도의 열매는 믿음(The fruit of Prayer is Faith)


믿음의 열매는 사랑(The fruit of Faith is Love)


사랑의 열매는 봉사(The fruit of Love is Service)


봉사의 열매는 평화(The fruit of Service is Peace)"




일생을 인도의 헐벗고 굶주린 이들과 함께 했던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아 헌금한 방문객들에게 주름진 손으로 직접 싸인해서 줬다는 카드에 담긴 글입니다.




가끔 기도를 하시는지요. 기도의 힘을 믿으시는지요. 저는 믿습니다. 살면서 진정 간절하게 기도한 일이 이뤄진 적이 여러번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솔직히 아쉬울 때만 기도하게 됩니다. 정말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인 모양입니다.




기도를 하자면 꿈과 희망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바라는 게 없으면 기도할 일도 없을테고 꼭 이뤄지리라는 믿음 없이 하는 기도는 말짱 헛것일 테니까요. 저는 세상사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이라도 자신만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용기는 싹트고 꿈은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의 가장 간절한 희망은 무엇인지요?? 유학, 취직, 결혼, 승진, 건강, 내집 장만, 자녀의 대학입학 등 무수히 많겠지요. 젊은 분들은 보다 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차 성사될 수 있는 꿈, 중년에 들어선 분은 거창한 꿈보다 건강과 지속적인 근무, 자녀의 좋은 대학 입학등 실질적인 소망을 지니고 계시겠지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결과 꿈의 크기와 부피를 줄여나가게 됩니다. 제 경우엔 언젠가 말씀드렸듯 어렸을 땐 퀴리부인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이 깨진 뒤에도 크고 작은 희망이 많았지요.




`물먹지 않고 제 때 승진했으면` `나만의 서재가 있는 넓은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소소한 것부터 `돈이 좀 많았으면` `유명해졌으면` 하는, 속되지만 절실했던 것 등등... 지금도 여전히 크고 작은 꿈을 갖고 있습니다.




내용은 좀 바뀌었지요. `뭐가 되고 싶다`거나 `남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헛꿈은 `확` 줄고, `모쪼록 식구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아이들이 계속 밝고 씩씩하게 자라줬으면` 한경닷컴의 `맛있는 인생`과 한국경제신문의 `천자칼럼`을 좀더 잘 썼으면` 하는 소박한 것들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꿈도 두어가지 있습니다.




가슴 속에 품은 한두가지 희망마저 없다면 그게 어디 살아있는 건가요. 아니, 살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저는 마음속에 오래 간직한 꿈이 언젠간 현실화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없이 사는 나날은 정말이지 시쳇말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 김광규씨는 `희망`이라는 시에서 `희망`은 외래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므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선집에 실린 이 시를 옮깁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설사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같은 꿈도 지우거나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한 채 기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불안하고 쓸쓸한 세상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꿈과 희망이 믿음과 기도만으로 달성되는 건 아니겠지요. 기도와 함께 노력하고 또 노력할 때 작은 소망에서 큰 꿈까지 내것이 되겠지요.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고(Prayer), 언젠가 내것이 될 그 결과를 믿고(Faith),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사람& 조직& 환경)을 사랑하고(Love), 힘닿는 데까지 그 사랑을 따뜻한 보살핌으로 실천하고(Service), 그리고 나면 설령 그 꿈과 희망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마음 깊이 커다란 평화(Peace)를 누릴 수 있지 않을른지요??****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자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하여/ 쫓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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