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욕설이나 음담패설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다면 지금 당신의 인생은 추하다. 혹시 연인과 진한 키스를 했거나,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면 그 역시 A급은 아니다. 또는 당신이 동성애자이거나 특정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덕후’라면 당신의 인생도 B급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얼마나 추한지 생각해보라. 하지만 추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바야흐로 B급 감성의 시대이니까.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Olympia]  / 출처=프랑스 국립박물관 연합(RMN)


이 글의 제목은 ‘추함의 미학’이지만, 사실 추함은 객관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1832년에 그려져 현재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마네의 '올랭피아'를 떠올려보라. 당시의 A급 여성은 '점 하나 없이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순결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현실 속의 여성상을 그대로 반영하여, 투박하고 무미건조하며 몸의 이곳저곳이 노란 자국과 털로 더러운 매춘부, 즉 'B급 여성상'을 그려내었다. 당시 예술계의 주류였던 '엘리트 계층'은 올랭피아의 모습을 보고 "노란 똥배가 나온 괴물"이라고 칭했다고 하니, 역시 '현실적인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상한 A급의 주류들이 자꾸만 B급의 비주류이기를 자청하고 있다. 지난 추석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을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B급‘이다. 1박 2일, 삼시세끼 등의 대한민국 대표 예능을 연출한, 현재 예능계의 명백한 주류인 나영석 PD가 '신서유기'라는 '병맛' 콘텐츠를 내놨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인들이 TV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치킨 브랜드나 담배 브랜드의 이름을 속 시원하게 내뱉으면서 깔깔거리고,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받던 '덕후'들이 공중파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는 희한한 세상이 온 것이다.

출판 시장도 마찬가지다. 올해 최고의 화제를 끈 인문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한빛비즈)은 심오한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과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깨달음만이 인문학으로 취급받던 '엘리트적인 사고'를 뒤엎고, 스스로를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칭하며 자신들이 B급임을 자랑스럽게 공표한 셈이다. 게다가 엘리트 예술의 황제 격이라는 '오페라'역시 본인들을 "B급 코미디 보듯 즐겨"달라고 부탁하며 스스로 '고상함'을 벗어 던지고 대중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올랭피아의 더러운 피부를 혐오하던 엘리트들이 점점 그녀의 더러움 속으로 중독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자유롭게 브랜드 이름을 말하는 출연자들 / 사진='신서유기' 화면캡쳐


그렇다면 과연 주류를 홀린 B급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웃기’에서 오는 쾌감과 재미이다. 나영석PD는 ‘5초 안에 담배 브랜드 5가지를 대시오’라는 돌발미션을 줌으로서, 기존 지상파 프로그램의 관습에 젖어있던 출연자들의 모습을 비웃었다. 나PD의 이러한 모습은 1832년의 마네와 매우 닮아있다.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린 것의 목적은 엘리트 예술에 대한 반항과 비웃음이었다. 고상한척 웃으며 비현실적인 여성상이나 그리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고 한다. 나PD의 새로운 시도 역시 한낮 ‘브랜드 이름’이 뭐라고, 일일이 검은 테이프를 붙이고 ‘삐-’처리를 하고 있는 지상파의 꼴이 우습게 보이게끔 만드는 쾌감이 분명 있었다.


지난 해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드라마 ‘미생’  / 출처=tvN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B급 감성의 주류와 상반되는 데에서 오는 매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나타난 매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대중은 B급 감성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목적 자체가 ‘동경’에서 ‘공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한해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네 삶은 본래 추하다. 힘들고 각박한 삶은 우리를 화려한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젊은 30대의 재벌 2세가 실장님으로 나오는 드라마보다는 직장인의 애환을 실감나게 다룬 ‘미생’이 더 우리네 삶과 닮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중은 B급 감성이 주는 “주류가 아님에도 우리는 이토록 즐겁다”는 공감과 쾌락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2015년의 대중은 알고 있다. 욕설, 폭력, 저렴함, 섹스, 동성애, 패배, 인터넷 등 고상하지 못한 것들을 완벽히 제외한 삶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에 따라 그동안 추함을 '부정'하는 데에 힘을 쏟던 문화 콘텐츠들이 최근 B급 감성을 ‘받아들이고 즐기는’데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의 문화는 대중에 말한다. 우리는 모두 올랭피아들이고 참으로 다양한 ‘추’함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조금 미워도 괜찮다고.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이토록 즐겁지 아니한가.
이 기사는 한경닷컴 스내커 대학생 기자단이 직접 취재해 작성한 것입니다.

전수영 한경닷컴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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