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구석구석에, 가을단풍 명산들이 하고많습니다.
대둔산도 그 중 하나이지요.
충남과 전북 그리고 3개 시군(논산, 금산, 완주)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릴만큼 1천여개의 암봉이 6km에 걸쳐
이어져 있어 산세가 빼어난 명품산으로 입소문 나 있습니다.
정상인 마천대(878m) 턱밑까지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덕?에
발품을 덜 들이고도 산정에 이를 수가 있어 특히나 가을단풍철이면
산객들로 북새통이라 산은 심히 몸살을 앓습니다.

하여, 산객들로 붐비는 대둔산 집단시설지구 입구(전북 완주군 운주면)를
피해 반대편인 수락전원마을(충남 논산시 벌곡면)을 들머리로 하여
대둔산 서북 암릉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버스가 멈춰 선 곳은 수락전원마을 입구.
조성해 놓은 택지엔 잡초가 무성하네요. 아직은 마을이 썰렁합니다.
마을 뒤로 보이는 대둔산 서북능선이 어째 만만해 보입니다.
실은 거친 이빨을 숨기고 있는데 말입니다.


들머리를 알리는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택지를 가로질러 산 언저리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들머리를 찾습니다.
순전히 感만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촉이 좋았습니다.
그다지 헤매지않고 등로임을 알리는 표식리본을 발견했지요.


숲은 서둘러 잎을 떨구어내며 겨울채비에 들어갔습니다.
떨어진 낙엽이 발 밑에서 서걱거립니다.
좀 더 곁에 두고 싶은 '가을'인데 바람과는 달리 허둥지둥 떠나려 합니다.

 


40여분,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암릉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냅니다.
발아래로 에딘버러CC 코스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내려다 보이는 골프코스 생김새가 애호박을 닮았습니다. 너무 비약인가요?
서북방향 저멀리, 운무에 갇힌 계룡산은 그대로 고립무원입니다.
북동방향 저멀리, 서대산은 망망대해 孤島와도 같습니다.

등로는 뚜렷한데도 정작 바위구간엔 안전로프가 없거나
삭아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부실합니다.
앞선 일행 몇몇은 바위벽에 매달려 부실한 로프를 응급처치합니다.
뒤따르는 일행들의 안전을 위한 아름다운 배려이지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라 긴장하며 걷다보니
칼로리소모가 휠씬 높아진 모양입니다.
잠시 바위턱에 걸터앉아 단감으로 칼로리를 보충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로프를 다 없애!"
"그러게말이야, 산객 목숨은 안중에도 없나보지!"

지나가는 산객들 대화내용이 알쏭달쏭해서 물었습니다.

"아~ 글쎄, 저 아래 태고사 스님들이 이곳 북릉의 안전로프를
죄다 끊어 없앤다지 뭡니까?  암릉을 오가는 산객들로 인해
수행정진에 전념할 수가 없다나요~ 원"

설마요, 그냥 떠도는 '썰'일 거라 생각합니다.
글쎄요,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2년 전 구름다리를 지나 마천대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주 등로라 그런지 이정표와 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지요.

한적한 북릉도 대둔산 도립공원에 속해 있는 개방된 산길이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서자취급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安山을 위한 등로 보살핌이 필요해 보입니다.
암릉 본래의 느낌은 그대로 즐길 수 있게끔 가급적
인공적인 느낌은 덜 나게 말입니다.




돛대봉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돌아다 봅니다.
암릉에 점점이 박힌 산객들은 가을산과 하나된 느낌입니다.
구름띠를 두른 계룡산, 돛대봉을 딛고 선 산객, 그리고 잿빛하늘,
여백과 절제의 美를 담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첩첩 산은 거침이 없으며 겹겹 능선의 유연함은
휘어져 감기우는 '僧舞'의 장삼자락을 연상케 합니다.


잠시 내려놓은 넋을 챙겨 발길을 옮깁니다.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찌뿌둥합니다.
암릉은 점점 더 거친 이빨을 드러냅니다.
네발로 바위벽을 기어오릅니다.

직벽에 올라붙었다가 스텝이 꼬여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현기증이 일만큼 크게 벌어진 바위틈새를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우회길이 없어 일행이 휴대한 로프를 바위벼랑에 걸어
간신히 매달려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산죽 무성한 급비탈에서 나뒹굴기도 했습니다.
실은 팔다리만 성하다면 걱정할 정도의 코스는 아니지요
소생은 왼팔(수술후장애)이 부실하여 암릉코스는 쥐약?입니다.ㅎ


아찔.. 짜릿.. 오싹.. 하지만 묘한 흥분이 느껴집니다.
기묘한 암릉은 낙조대로 까칠하게 이어집니다.


왼쪽 산자락에 절집 지붕이 내려다 보입니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태고사'입니다.
고즈넉한 산사에 가을정취가 물씬 묻어납니다.
홀로 산행이라면 내려가서 한바퀴 둘러보고 싶었는데...
마음만 두고 그냥 스쳐 지납니다.


다시 버벅대며 암봉에 올라서자, 이번엔 멋들어진 소나무가
걸음을 멈춰 세우네요. 한 줌 흙도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대체 어디로, 얼마나 길게 뿌리를 내렸을까요?
놀라운 생명력에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변화무쌍한 암릉을 걸어 드디어 '낙조대'에 닿았습니다.
해너미 광경이 일품이라 해질녘이면 출사 포인트는 만원이랍니다.
한 컷을 건지기 위해 비박도 불사하는 열혈 출사꾼들이
사시사철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서북쪽 계룡산, 북동쪽 서대산, 그리고 동쪽 덕유산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사위를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878m)가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2년 전 4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 '곡우'에
마천대에 올랐다가 엉뚱하게도 春雪을 경험한 적이 있지요.
마천대를 건너다 보니 그때의 설렘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마천대의 붐빔이 싫어 낙조대에서 곧장 수락주차장 방면으로
내려섰습니다. 낙조대에서 수락주차장까지는 2.75km입니다.
이 구간에선 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도 보입니다.


긴장이 풀리니 온 삭신이 다 쑤십니다.
그러나 기분만큼은 상쾌합니다.
타박타박 가을 숲길을 걸어 나와 버스에 올랐습니다.

 
대둔산 서북릉(수락전원마을 -> 돛대봉 -> 747암봉 -> 낙조대 -> 수락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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