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뭐 먹을까?"

"글쎄...못 고르겠어! 아무거나 먹자!"

"나도 뭐 먹을지 모르겠는데... 나 결정 장애 있단 말이야!"

점심시간, 대학생 김씨와 박씨의 대화이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결정 장애’라는 것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리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사소한 점심 메뉴 고르기부터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일까지 사람들은 선택을 내리는 일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랑스 철학가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B(Birth·탄생)과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선택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피한 관계인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이 타고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렇게 고르는 것에 있어서 ‘장애’를 겪을까?


via yuobserver


올리버 예게스의 저서 ‘결정 장애 세대’라는 책에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대답은 “글쎄요”가 대부분을 이루며,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태로움을 느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점심메뉴, 카페에서 먹을 음료 고르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자신의 진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기업을 고르는 일까지 청년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 지쳐있다.

무엇을 골라야 나에게 좀 더 유리할까, 어떤 것을 선택해야 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대학교에서 자신이 들을 수업을 결정하는 수강신청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학생 이씨는 수강신청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수업의 내용보다도 교수님이 학점을 얼마나 잘 주는 가가 수업을 고르는 주요 기준이 된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이라도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취직을 위해 스펙을 완성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매 순간의 사소한 결정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놀기’보다는 ‘학원’을 가는 선택을 할 것을 강요받아왔다. 또한, 진로를 정할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으며 연봉이 높은 일’을 골라야만 한다고 은연중에 세뇌당해왔다. 또한 중.고등학교 때는 그저 학교에서, 또는 부모님들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이라고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마자 급작스럽게 얻은 자유는 청년들에게 너무 버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시간표를 자신 스스로 계획하는 일부터 급식식단표가 아닌 스스로 식사메뉴를 선택하는 일까지. 고등학교 내내 자유를 갈망해왔지만 갑자기 얻게 된 자유는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때부터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온 청년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손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 될까 알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을 하는 일에 있어 두려움이 앞선다.


사진=미래의 창 <결정장애 세대>


‘결정장애 세대’라는 책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늘 자기를 완벽하게, 전체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늘 완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언제나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렇게 선택하는 일이 괴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아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며 결정 장애자들의 스트레스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씨앗, 너무 애쓰지마. 너는 본디 꽃이 될 운명일지니" / 박광수,  앗싸라비아 中



이 기사는 한경닷컴 스내커 대학생 기자단이 직접 취재하여 작성했습니다.

박수진 한경닷컴 대학생 기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