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인들이 부부의 연을 맺고 또 많은 부부가 이혼한다. 사랑한다고 같이 있자고 영원히 보며 살자고 맺은 언약에 무엇이 문제인가! 남자는 여자를 아내로 맞을 때 자신의 자식을 잘 키워줄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한다. 여자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을 때 오직 자신만 사랑해 줄 남자를 선택한다. 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피차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그리 하겠다 수용하는 것은 아닐까?

남자는 여자가 그저 아내로 있어주기를 바란다.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시부모에게 잘 대하고 내조에 게으르지 않는 아내이기를 바란다. 거기에 여자가 바라는 여자는 없다. 아내가 여자이기를 요구하면 남자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편의 사랑이 확인되면 무엇이든 한다. 살림도 아이도 시부모도 내조도 모두 여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잘 해 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편의 사회적 지위나 부(富)나 명성은 옵션이다.

남자는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일을 선택한다. 일을 통해 벌어 오는 재화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원천이 되며 남자의 자존감을 극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족스러운 지경에 이르면 당연히 아내도 자신만큼 행복해 할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표현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 부드러운 위로, 따뜻한 다독임이야 말로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재화가 좀 부족하더라도 지위나 명성이 없다고 해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지면 모든 것을 감수해 낼 수 있다. 이렇게 부부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철저히 실행하는 한 갈등은 필수다.

현명한 부부는 각자의 일을 존중한다. 배우자에게 감정 섞인 요구를 하지 않는다. 각자 맡은 바 처지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서로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관계에서 부족하거나 요구하고 싶은 것들은 그저 자신의 부족이라 인정하며 살 뿐이다. 우리가 갈등을 경험하는 것은 타인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로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것들이다.

예를 들면 존중, 배려, 희생, 관심 등과 같은 욕구와 관계한다. 그것은 내면에서 타인으로 인해 얻고 싶은 만족, 자랑, 권위 등과 관련된 욕심이다. 배우자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없으면 갈등도 없다. 그저 서로 기대어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삶의 동반자로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안타까움, 미안함, 위로, 희생, 존경, 사랑, 배려, 존중과 같은 단어들만 존재한다.

인간의 생(生)은 고(苦)와 함께 출발한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생의 기로에 부부로 만나 사랑하겠노라 다짐하는 것은 불안하고 어려운 지경에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좌절하고 비틀거리고 주저앉을 때 손잡아 일으켜주고 고통과 괴로움으로 힘들어 할 때 등받이가 되어주겠다 약속하는 것이다.

결혼(結婚)한다는 것은 자신의 혼(魂)을 배우자의 혼(魂)과 맺는 의식이다. 그래서 어쩌면 결혼의 한자어 ‘結婚’는 ‘結魂‘으로 바뀌어야 옳지 않을까 싶다. 결혼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녀와 양가(兩家)가 어떤 형식으로 맺어지는 것만으로는 부부의 인연(因緣)을 유지해 가는 것에 부족함이 많다. 부부는 그렇게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질 수 없는 혼(魂)과 혼(魂)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친밀하고 다정하게 상대를 배려할 수 있지 않을 까! 지금 당신은 배우자의 혼(魂, 넋, 얼, 정신, 영혼)이 느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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