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가 남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보통 벗어선 뜨지 않는다.

그녀들의 이야기다.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몸매는 꽤 괜찮았던 걔들, 눈요기로 전락한 당신들의 딸들 말이다.

 

  1. 벗으라면 벗겠어요


 

지난해 말 무명 걸그룹 EXID는 사상 초유의 음원 역주행 열풍을 일으키며 가요계에 강제 컴백했다. 정작 그해 정규활동 당시엔 음악방송 1위 발표 순간마다 철저히 병풍 노릇을 해오던 그녀들이었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한을 풀 듯 방송사를 옮겨 다니며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 것이다.

그녀들의 인생 역전엔 이른바 ‘직캠’을 찍은 어느 팬의 가상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직캠만의 공은 아니었다. 이 영상에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하니라는 멤버에게도 지분이 있다. 클로즈업 대상이 유난히 요염한, 그리고 마침 그런 안무를 대단히 잘 소화한 그녀였기에 역전 홈런이 가능했다.

 


담장이 아니라 경기장을 넘겨버린 홈런의 주인공.


나머지 멤버들은 그녀에게 절이라도 해야 한다. 사진, 유튜브 영상 캡처


 

이 직캠의 흥행은 가요계의 전반적인 기조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노래가 망해도 춤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안무가 다소 선정적이더라도 일단 주목을 받는다면 곡이야 어찌됐든 주인을 따라 올라왔다. 그렇게 일회성 관심이 모여 현상이 되고 인기가 된 것이다.

EXID와 비슷한 성공이 없진 않았다. 여동생 같던 걸그룹 카라는 섹시 콘셉트를 표방하며 엉덩이를 흔듦과 동시에 대박을 쳤고, 여세를 몰아 일본까지 건너갔다. 물론 그때의 그녀들은 더 이상 여동생이 아니었지만. 밴드로 데뷔한 AOA 역시 그룹의 본격적인 역사를 말할 땐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을 때부터 말해야 할 정도로 이전까진 생소한 이름이었다. 마치 소속사 차원에서 ‘이번에도 안 되면 벗자’는 각오라도 다진 듯 벼랑 끝에 몰린 그녀들은 순순히 벗거나 섹스 어필로 무장했다. 그리고 스타가 됐다.

다만, 모두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역사상 최고(혹은 최악)의 선정적 안무를 선보였던 스텔라는 활동에 앞서 공개된 뮤직비디오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음원 판매로 정작 그녀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거나 입지가 다져진 건 아니었다. 노출과 인기가 인과관계에 있지 않음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유명해진 걸그룹 가운데 섹시 콘셉트가 많았다는 것은 단지 상관관계였을 뿐이다.

그녀들은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노이즈 그 자체였다. 이름을 알린 대가로 얻은 온갖 불명예스런 수식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이제 와 뱉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스텔라는 올해도 같은 콘셉트를 유지했다.

이렇게 벗을수록 뜨거워지는 경쟁은 누군가의 반사이익이기도 했다. 종전까진 완전경쟁시장이던 청순 콘셉트가 역으로 블루오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니들이 벗을수록 그녀들에겐 희소가치가 생겼고 주가가 폭등했다.

 


그나마도 많이 가린, 스텔라의 공연 장면. 사진, 한경닷컴


 

  1. 화무십일홍


 

사실상-성-행위예술에 가까운 가수들의 등장이 남성으로서 전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들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고민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섹스 심벌에 대한 환호로 만족하는지, 무대 뒤에선 어떤 표정인지를 말이다. 물론 그녀들도 말하지 않는다. 일거수일투족에 엄연히 소속사가 존재하는 철저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추행의 전제가 여성의 동의 여부이고, 몸을 흘기는 것으로도 이것이 성립된다면 그녀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동의했는지를.

이 비즈니스의 성공신화는 남성들의 묘한 이중성이 기저에 있기도 하다. 섹스 심벌에 대한 열광과 환호는 오로지 타인에 대한 것, 즉 자신과 완전히 관계되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인이나 가족이 성을 상품화 하는 것에 대해 남성들이 얼마나 관대한 견지를 취하는지는 의문이다. 때문에 ‘벗으면 뜨는’ 공식은 터부에 대한 대리만족이 드러난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그녀들의 최종 소비자가 남성이라는 것엔 부인의 여지가 없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주소비계층이 갈수록 어려지는 점은 이 모순에 어떤 비극을 낳기도 한다.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지인이라서 방송에 나왔다가 유명해진 신분미상의 연예인처럼 막연한 TV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느닷없이 오디션을 보겠다는 딸이 엉덩이를 흔들며 ‘오늘 밤’ 같은 가사를 흥얼거리고 연습한다면 당신은 “우리 딸, 참 잘한다”고 말해 줄 수 있는가. 물론 당신은 딸의 꿈을 응원할 것이다. 영애께서 벗지는 않으시는 쪽으로.

철저히 남성들이 좋아할 만하게 육성된 인기 영합형 여가수들의 범람은 그녀들 스스로에게, 혹은 소속사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더 벗을 수 없다면 도대체 다음 수는 무엇이란 말인가.

대개의 아이돌 그룹은 계약 갱신을 전후로 해체 위기에 놓이고,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의 경우엔 30대 이전에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이미지 소모가 심하다. 전직 후에도 ‘몸으로 떴다’는 꼬리표가 남는다면 크나큰 페널티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미래를 맞을 그녀들에게 ‘온몸 승부’가 과연 화려했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처음부터 노래보다 춤과 몸매에 자신이 있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녀들은 도대체 왜 가수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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