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메일 것입니다




비가 오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해도 낮에는 더워서 가을이라는 느낌이 없었었는데 갑자기 가을과 겨울을 함께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올해도 2달여 정도만 남았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늘 이때만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뭔가 일 년의 결산을 잘해야 할 것 같고 마지막으로 그래도 뭔가 하나는 꼭 해 놓고 싶어진다.


가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이다. 이 시를 읽으면 성과물, 결산, 꼭 해야 하는 일보다는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서 이 가을이 가기 전 업무상이 아닌 나를 위해 한권의 책이라도 읽고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져할 것 같다. 그리고 낙엽지는 산이나 야외에서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시간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앞으로 더 좋은 시간들을 만들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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