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애도 속에 기적이 일어나길 빌어 봅니다.


 
세상이 우울합니다. 우울해서 참회의 기도를 합니다. 신(神)을 부르기도 부끄러워 그냥 참회의 언어를 펼쳐봅니다. 어떤 언어로도 슬픔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는 억울한 혼들을 대신해서 통곡을 해야 합니다. 어른들과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트라우마는 긴 역사가 오래 오래 기억할 겁니다. 슬픔은 망자를 달래는 예의이며 산 사람을 참회시키는 고된 여정. 참사의 슬픔을 피하지도 감추지도 말자. 슬픔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인류의 모순과 탐욕을 벗기고 참회하는 계기로 삼자. 산 사람은 또 다른 새로운 희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언어의 사치다. 망자의 영혼이여! 아픔도 슬픔도 미련도 공포도 없는 곳에서 다시 영생을 찾으소서!  



유가족의 아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 그냥 억울하고 참담한 희생일 뿐이다. 망자의 불행과 망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통곡은 산 자의 참회가 있을 때 비로소 업보가 녹는다. 큰 불행은 꼭 움켜쥐었던 것들을 비우고 버리게 한다. 산 자는  망자를 위해 살아 있는 값을 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를 돌아보고 부끄러운 면모들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고 빌어야 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그대들의 영혼 앞에서는 죽음을 위한 그 어떤 변명도 위로도 논리도 정당하지 못하다.  



차마 따라죽지 못하는 산목숨들이여! 영혼들 앞에서 양심을 찾아서 참되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자. 일단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크게 잘못을 했다’ 고 용서를 빌자. 그리고 망자의 부활을 기도하자. 그러나 젊은 혼들을 어떤 언어로도 구원할 수 없다. 슬픈 것은 그냥 슬픈 것이다. 산자의 애도 속에 큰 기적(奇蹟)이 일어나길 빌고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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