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리적으로는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의 서쪽, 청운동,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에 속한다. 경복궁역 2번 3번 출구를 끼고 있는 대로변에서 가지처럼 펼쳐지는 골목길들이 모두 서촌에 해당한다.


이 곳은 전문 지식인층이었던 중인들을 비롯해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들이 인왕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잘나가는 사대부들도 앞다투어 별장을 지었던 곳이다. 근대기에 와서는 이상과 박노수, 이상범, 윤동주, 이중섭 등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서 살았었다.


박노수 가옥을 나와 수성동 계곡 방향으로 더 올라가다 보면 왼쪽은 누상동 오른쪽은 옥인동으로 나뉜다. 그 사잇길 윤동주의 옛 하숙집 터가 나온다. 지금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었지만, 1940년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가 머물며 시를 썼던 곳이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의 고향은 북간도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보면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비치던 바로 그 우물이 있는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윤동주는 1937년 진학을 앞두고 문학공부를 원하지만 아버지는 의학을 전공하라고 해서 한동안 갈등을 겪는다. 졸업반인 5학년 2학기부터 다음해 1938년 초까지 부자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는다. 윤동주가 식음마저 전폐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할아버지 윤하현과 외숙부 김약연이 나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마침내 연희전문학교 문과반으로 진학이 이루어지면서 서촌과의 인연이 생기게 된 것이다.


1941년 일제의 혹독한 식량정책으로 기숙사에서 나온 윤동주는 넉 달쯤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 생활을 하는데,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며, 문학적 의견을 나누고 배움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시기에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명시들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깊은 장소다.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쫒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그는 문학에 대한 수업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시인 백석의 시집 <사슴>이 100부 한정판매로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자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와 밤새도록 필사해서 책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19편의 자필시고 3부를 만든다. 그래서 한 부는 이양하 선생님께 그리고 나머지 한 부는 정병욱에게 주고 하나는 자신이 가진다. 원래 이 시집은 그 당시 출판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양하 선생께서 혹시 윤동주 신변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그 당시는 너무나 당연한 권고고 그다지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검거가 되었고 정병욱은 소위 학병으로 끌려간다. 피차에 생사를 알 수 없었지만 정병욱은 윤동주의 자필 시고를 자기의 어머님께 소중히 잘 간직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 전문학교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유언처럼 남겨놓고 떠났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잘 지켜주시어 해방 후인 1948년 1월 30일 빛을 보게 된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1943년 7월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2월 16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갔어도 우리는 정병욱 덕분에 그가 남긴 시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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