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가면 한때 이중섭이 머물던 하숙집이 있다. 친구 정치열의 집으로 “정은 시내 누상 동에 일본식 2층 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업상 아직 부산에 남아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누상동 집의 아래 층은 집을 지켜주는 임시 입주자가 쓰고 2층의 널찍한 8조 다다미 방은 중섭의 공방이자 주거로 쓸 수 있었다.” 1954년 7월 30일자 중섭의 편지는 다음과 같다. < 부산시 동대신동 3가 1342( ?) 4반 정치열 아형> 이라는 봉투 이면에는 < 서울 누상동 166의 10 제 이 중섭>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그곳이다.




수일 전에 집 문에 ..... 편지 받는 함 만들엇씀니다. < 형이 와 보시면 웃으실 것임니다.> 라고 써부쳤뜨니 ..... 편지 잘 옴니다. 늘 편지 주십시오 . ................ 집 잘 직히니 ........



그곳에서 그는 서울로 돌아온 예술가들과 함께 그림값보다 더 많이 술값을 내면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였고 ,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 남덕이한테 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 팔아야겠어 >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홍대로 가서 김환기, 박고석을 만나 돈을 빌려 그림에 전념하여 1955년 1월 18일 - 27일까지 그의 최초의 개인 개인전을 연다. 작품전 안내 목록 뒷 표지에 김환기의 찬이 있다.




중섭 형의 그림을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이 없이는 하기 힘들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중섭 형은 참 용한 것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그러한 것을 생각해 내고 또 그렇게 용한 표현을 하는지 그런 것이 정말 개성이요 민족 예술인 것 같다. 중섭 형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술가의 한사람이다.



                                                                                       < 길 떠나는 가족 >


그 당시에도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개성을 지닌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그의 그림을 보면 요즘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되는 작품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청량리 백화점의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진짜로 본 적이 있는데 작고 빛 바랜 은지화라든가, 소의 그림, 가족들과의 행복한 생활을 그린 그림들 모두가 하나의 작은 소설같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삶도 한 편의 소설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중섭을 대상으로 하여 김춘수는 연작시를 쓴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 내가 만난 이중섭>



이 중섭이 누구보다도 아내를 애틋하게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이중섭은 1916년에 평안도 부농의 가정에서 막대로 출생한다. 그는 오산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부에 가입해 교사이던 임용련, 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 공부에 몰두를 하고 이 때 식민 당국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반발해 한글 자모로 된 그림을 그렸으며 이때부터 소를 즐겨 그린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문화 학원에서 아내가 된 마사코, 한국이름으로는 이남덕을 만난다. 그리고 1938년 자유 미술가 협회 공모전에 응모하여 협회장상을 받는다. 다시 원산으로 귀국해 아내와 정착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1950년 6. 25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으로 피란을 와서 살다가 조카 이영진이 있는 제주도로 가서 생활을 한다. 휴전무렵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두노동이나 운수 회사의 인부 노릇을 하지만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떠난 후 이중섭은 대구와 부산, 통영 . 진주, 서울 등을 오가면서 1955년 성황리에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러나 전시화가 끝나고 아마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결국 마음의 병이 되어 서울 서대문의 적십자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56년 가을 적십자 병원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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