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가족’을 주제로 한 칼럼을 게재한다. 가족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가족이어서, 가족이니까’라는 생각이 언제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밖으로 확산된다. 소위‘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는 무엇을 해도 이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에 갈등에 빠진다. 이 또한 가족의 또 다른 부정적 관념이다. 오래된 모임이나 수십 년 된 집단을 들여다보면 서로 잘 이해되기 보다는 더 잦은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문제는 예의(禮意)다.

가족이어서 잘 아는 사이어서 오래 된 관계여서 쉽게 간과하는 예의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핵심요소다. 뭐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그 사람이 알겠지 잘 아니까 바른 소리를 해야겠다는 식의 생각들은 그 속에 예의가 없다면 ‘조언’라는 탈을 쓴 폭력이 된다. 때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해 줘야 하는 것도 있다. 가족은 더욱 그렇다. 그름을 수정하게 해야 하는 지적이라면 특별히 유념해서 사랑을 담은 표현이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엄마니까 아빠니까 라는 생각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 선배니까 대표니까 동생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내 뱉은 조언은 그 생각부터 독선(獨善)이다. 그가 무엇이든 어떤 의미이든 상대를 대함에 있어 예의를 저버리는 표현은 욕이다. 정말 그 사람을 잘 안다면 그를 마음으로 배려하고 보듬고 덮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할 예의다. 가정에서 예의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회 집단에서도 폭력을 행사한다. “집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도 센다.” 는 말은 진리(眞理)다.

가족이어도 또 그 어떤 관계여도 상대를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남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함이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사람은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권위든, 사회가 만들어 준 권력이든, 관계가 만들어 준 지위든 스스로 그것을 가졌다고 인지되어 있는 한 그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주 작은 데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의 우월(優越)이 그렇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이해받고 존중받는 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매몰된다.

이러한 생각은 자존(自尊)감을 높여주어 웬만한 어려운 일도 잘 견뎌내게 하기도 하지만 거만하여 망종(亡種, 아주 몹쓸 종자, 행실이 아주 못된 사람)에 빠지게도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는 아무런 지위도 얻지 못하던 사람이 가족이 생기면서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막강한 지위를 얻게 되면 자식에게 갖가지(언어, 신체, 심리)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어쩌다가(아부를 잘 한다든지, 운 좋게 기회를 잘 잡았다든지, 생각지 못한 재능이 나타나 어떤 지위를 획득 했다든지 등등…) 지위를 얻게 되면 교만해 진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과정에서 사람들의 실언(失言)이나 실수(失手)를 눈여겨본다.

이성을 잘 조절하고 있을 때는 예의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실수나 실언에서는 그 사람의 본성을 보게 된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실수나 실언을 만회하기 위한 변명은 모두 거짓이다. 반복되는 실수나 실언은 그 사람의 본심을 명확히 대변한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어기제 중 취중(醉中)진담(眞談)은 모두 진실이다. 이러한 행위 중에 예의가 없거나 타인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그가 어떤 형태에 놓여 있든지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