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활동했던 문학가 이상은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건축가이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의 배화여중 근처에 있던 신명학교를 거쳐 보성고보를 다니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 총독부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다. 그는 1936년 27세 때 동경으로 가서 28살에 사망하는데,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 경성에서 산다.


이상은 백부 김연필의 집인 경성부 통인동 145번지에서 1912년 3살 때부터 백부가 사망하는 1932년 2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지금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은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하는 그 집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냥 서촌의 한옥으로써 80년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건물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하여 개조된 집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집이다. 그의 시 중에 오감도라는 시가 있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 시는 지금 보아도 난해한 시로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특이한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상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처음에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시인데 1934년 7월부터 8월까지 연재되었던 시로, 신문이 배포된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조선중앙일보사>에는 빗발치는 항의와 문의 전화가 쇄도하였다고 한다. 원고를 싣기로 결정했던 이태준은 「오감도」가 나가는 동안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 결국 이 시는 원래는 30회 연작이었으나 반밖에 싣지 못하고 8월 8일 자 신문을 끝으로 15회 만에 중단되고 만다. 이태준은 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의 「오감도」는 처음부터 말썽이었어. 원고가 공장으로 내려가자 문선부에서 ‘오감도(烏瞰圖)’가 ‘조감도(鳥瞰圖)’의 오자가 아니냐고 물어왔어. 오감도란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듣도 보도 못한 글자라는 것이야. 겨우 설득해서 조판을 교정부로 넘겼더니, 또 거기서 문제가 생겼어. 나중에 편집국장에까지 진정이 들어갔지만 결국 시는 나갔어. 그다음부터 또 문제였어.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당장 신문사에 가서 오감도의 원고 뭉치를 불살라야 한다.”, “이상이란 작자를 죽여야 한다.”…… 신문사에 격렬한 독자 투고와 항의들이 빗발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지.”당대를 훨씬 앞지른 이 시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지닌 이 시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상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부의 집으로 입양을 가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로 살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집에도 아이가 있었는데 백부 연필이 만주 여행 도중 아들있는 여자를 얻어 귀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렇게 실부와의 헤어짐 ,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들은 무의식적 외상이 되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연구자들은 생각한다. 이 시 또한 거리를 질주하는 열 세명의 아이의 이미지 , 그러나 무서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없는 것 등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외로움, 공포, 분리불안을 표현한 시라고 해석되기도 하는 시이다.


그러나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는 “막다른 골목”, “뚫린 골목 ” 이란 구절은 이상이 태어나 자란 사직동, 통인동, 누상동 등 인왕산 자락의 가느다란 미로같은 골목을 그 원형으로 한 것으로, 그런 골목길을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유소년기의 기억이 반영되었다고도 본다. 시속의 아이들이 달리던 도로는 종로와의 경계선으로 좁고 막다른 골목에서 아이들에겐 신기함과 모험의 장소이면서도 공포의 장소인 종로의 큰길로 내닫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현대인들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낸 시인이라도 생각한다. 좁은 골목길에서 도시화되고 물질 문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종로를 꿈꾸면서도 무서워했고 불안해했던 그 마음들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가  많은 대중문학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는데 1995월에 개봉한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란 영화가 있고 1995년 <금홍아 금홍아 >라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2013년 11월 28일 mbc에서 <드라마페스티벌- 이상 그 이상> 이라는 것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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